아파트 게임 표지

박해천 지음│휴머니스트│ 322쪽│1만8000원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의 별칭이다. 공항에서 내려 강변로를 타고 들어오는 외국인은 병풍처럼 늘어선 아파트 단지에 먼저 놀란다.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사는 집'의 다른 이름이다.

아파트는 또한 부(富)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부동산 시장의 한 축으로 군림해온 게 아파트 시장이다. 사고팔면서 돈을 불리거나 낭패를 본 사람들이 허다하다.

이런 아파트의 다채로운 면모와 변천사를 소설 형식으로 조명한 책이다. 서울·수도권 아파트 시장에 뛰어든 세대별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게임을 풀어 아파트를 이용해 중산층이 됐는지, 또 못 됐는지를 간접 체험해 볼 수 있게 한다.

우리 경제는 6·25전쟁 이후 60여년간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경제 개발이 시작된 1960년대 후반, 제2차 유류 파동이 왔던 1970년대 중·후반, 3저 호황이 이어진 1980년대 중반,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어섰던 1990년대 중반, 증시의 '바이 코리아' 열풍에 이은 카드 대란, 아파트 버블로 이어지던 2000년대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작가가 내세우는 가상의 플레이어는 두가지 상반된 유형이다. 한 사람은 그저 은행 이자로만 자산을 불리겠다며 소박하게 산수를 적용해 나간 플레이어. 다른 사람은 아파트를 지렛대로 삼아 복잡한 함수를 풀어가며 자산을 불려 끝내 중산층으로 올라선 쪽이다.

이 책은 챕터별로 세대를 나눠, 각 세대가 어떻게 아파트 시장에서 성공하고 실패했는지 세밀하게 묘사한다.

1장은 4·19 세대 이야기다. 1940년대에 태어나 청년기에 4·19 혁명과 5·16 군사 쿠데타를 겪은 이들이다. 중동 건설 노동자들의 자금이 개발 시기와 맞물리면서 아파트 붐이 일던 시기를 겪은 세대다. 이들은 아파트 건설 붐과 더불어 뜨기 시작한 강남 지역을 집중 공략한 끝에 다수가 중산층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2장에는 1950년대생 베이비부머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이 성인이 된 1980년대 중·후반 3년 연속 경상수지 흑자로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아파트로 흘러 들어갔다. 민첩하게 흐름을 읽고 아파트를 사들인 사람은 수월하게 중산층이 될 수 있었다.

반면 '뒷북'을 친 이들도 허다했다. 책에는 '아파트 게임'에 뒤늦게 참여한 사람의 어려움도 함께 묘사된다. 그 중의 한 명인 K씨는 2002년 전후로 정치 개혁의 열망과 자본 소득의 욕망이라는 엇갈리는 두 흐름 속에서 전자에 몸을 기울였다. 하지만 끝모르게 치솟던 아파트값은 20회에 이르는 정부 대책에도 수그러들 줄 몰랐고 K씨는 결국 뒤늦게 아파트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3장에서는 1960년대생인 386세대가 등장한다. 주인공은 대학 때 이미 자산가의 자녀들과 친분을 쌓으며 아파트 게임에 참여하는 법을 배운다. 1993년 정부 주도의 신도시 건설 당시 평당 180만원에 32평 아파트를 분양 받으며 처음으로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 이후 1990년대 말 구조조정 한파, 2000년대 초 주식 열풍을 통해 목돈을 마련한다. 이후 반포의 재건축 단지를 매입해 투자에 성공한다.

과거의 얘기가 끝이 나고, 뒤이은 4장과 5장에서는 현재의 아파트 게임이 묘사된다. 과거와 달리 이제 아파트에는 청년들이 살고 있다. 하숙방, 벌집방, 고시원, 원룸이라는 이름의 큐브 형태 주거 공간이다. 과거 세대들은 고도 경제 성장의 성과급 명목으로 아파트값 폭등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이 선물은 사다리가 됐고 그들은 중산층이 됐다.

하지만 21세기 큐브에 살고 있는 20~30대 신세대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런 '고속 사다리'를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게임의 룰은 바뀌었고, 이들은 아파트 가격 폭등이라는 무거운 짐만 지게 됐다.

픽션의 형식을 취했지만 몸체의 상당 부분을 사실에서 가져와 내용이 탄탄하다. 방대한 양의 신문기사와 통계, 각종 소설 등을 인용하고 있어 생생하고 현실감 있게 읽힌다. 저자는 소설가 뺨치는 필력으로 과거와 현재의 변화상을 실감 나게 그려낸다.

책의 시선은 얼핏 봐서는, 아파트 정책에 대한 시비를 가리기보다 아파트를 통해 우리의 생활사를 정리하려는 듯 보인다. 하지만 궁극적인 문제 의식은 올바른 아파트 정책의 수립에 가 있다.

저자는 지금 우리에게 아파트 게임의 새로운 규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용산 참사, 숭례문 방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새로운 게임 규칙의 필요성을 입증한다는 것. "정치가 저성장 시대에 걸맞게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고안해 내지 못하고 중산층은 욕망의 구조조정을 단행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아파트가 여전히 주인 행세를 계속한다면 세상은 악화일로를 걷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