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그룹이 결국 자금난에 무릎을 꿇었다. 30일 만기가 돌아온 1100억원의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상환하지 못하고 발행 기업인 ㈜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등 3개 계열사에 대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CP와 회사채 돌려막기로는 부채 비율 1200%라는 절벽에 선 동양그룹을 더 이상 끌고 나갈 수 없다는 항복 선언을 한 것이다. 동양그룹이 발행한 CP와 회사채는 총 2조3144억원이고, 이 가운데 이날 법정관리를 신청한 3개사가 발행한 액수는 1조9334억원 규모다.

동양그룹의 자금난은 3개 계열사 법정관리로 해결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 금융 당국의 판단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동양그룹 계열사에 남아있는 현금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동양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동양시멘트도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주 채권 은행인 산업은행 주도로 채권단 자율협약(느슨한 워크아웃)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30일 오전 동양그룹 계열사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긴급 브리핑을 갖고"동양그룹 계열사의 기업어음과 회사채에 대한 투자 피해가 발생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투자자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핵심 금융 계열사인 동양증권도 매각 수순에 내몰릴 수 있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사실상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다.

CP 발행 주체인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법정관리 신청 기각 유력

서울중앙지법 파산6부는 이날 법정관리를 신청한 ㈜동양 등 3개사에 대해 재산보전 처분과 함께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렸다. ㈜동양 등이 법원의 허가 없이 재산을 처분하거나 채무를 변제할 수 없도록 동결시킨 것이다. 30일 만기가 돌아온 1100억원어치의 CP와 회사채도 변제할 수 없다. 포괄적 금지명령에 따라 채권자들 역시 이들 회사를 상대로 한 가압류·가처분·강제집행이 금지된다. 재판부는 10월 2일 오전 10시 이들 회사 대표이사들을 불러 대표자 심문을 실시한 뒤 법정관리 개시 요건에 해당하는지 검토할 예정이다. 개시 결정이 내려지면 채권 조사, 기업가치 평가, 회생계획안 제출, 회생계획안 인가 등 후속 절차가 진행된다. 법원은 신속처리(패스트 트랙) 규정을 적용해 이 절차들을 최대한 빨리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해도 3~6개월 정도가 걸린다. 법원이 실사(實査)를 통해 ㈜동양 등 3개사의 존속가치(사업을 계속할 경우의 기업 가치)가 청산가치(기업을 청산할 경우 채권단이 받는 금액)보다 적다고 판단해 법정관리 신청을 기각하면 파산 절차에 돌입하게 된다.

법정관리를 신청한 3개 계열사 가운데 골프장 운영업체인 동양레저와 유연탄 수입업체인 동양인터내셔널은 회생 가능성이 낮다.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이 없는 기업들이라 법원이 법정관리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으로 금융 당국은 보고 있다. 두 회사는 금융권 대출이 거의 없어, 청산 시 지분 매각 등으로 생기는 자금은 CP와 회사채 투자자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동양은 그나마 주방가전용품 업체인 동양매직과 섬유사업부문(옛 한일합섬) 매각 등을 통해 회생이 가능할 수도 있어 법정관리가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동양그룹 해체 가능성 거론, 주력인 동양시멘트도 채권단 관리에 들어갈 듯

동양그룹은 31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지만, 상장기업은 동양증권 등 4개사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계열사들은 독자 생존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법정관리와 자율협약 등으로 주요 계열사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면 동양그룹은 사실상 해체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경영권을 상실하는 것이다. 현 회장 측은 이런 상황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표정이다. 현 회장 오너 일가는 계열사 주식을 모두 담보로 삼아 대출을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사재(私財) 출연이 힘들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력 계열사인 동양시멘트도 흔들리고 있다. 주 채권 은행인 산업은행이 채권단 자율협약(느슨한 형태의 워크아웃)을 통한 경영 정상화 추진을 검토키로 했다. 동양시멘트는 1조원대의 가치를 가졌다고 동양그룹이 주장하는 삼척화력발전소 사업권을 가진 동양파워의 대주주(지분 55%)다. 그러나 전체 채권의 40%인 3500억원 정도만 금융권 대출이고, 나머지 60%가 회사채여서 채권단 구성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산은 관계자는 "동양시멘트도 동양그룹 계열사들과 출자 관계로 엮여 있지만, 실체가 있는 기업이라서 다른 계열사하고 함께 무너질 정도는 아니다"라면서도 "자율협약이란 것이 법적인 근거 없이 채권단이 신사협약을 맺고 자금 지원을 하는 것인데, 60%에 달하는 채권을 가진 회사채 투자자 등이 자금 지원 대신 자신들의 투자금을 되찾겠다고 나설 경우 채권단 자율협약이 제대로 되기 힘들다"고 말했다.

동양생명은 계열 분리, 사명 변경을 검토키로 했다. 동양생명은 계열사이긴 하지만, 보고펀드가 57.6%의 지분을 갖고 있어 주인이 다르다. 동양그룹이 보유한 주식은 3%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동양그룹 위기론이 확산된 지난 23일부터 이틀간 보험 해지 환급금이 360억원에 달했다. 동양생명 측은 "동양그룹 계열사 법정관리로 불똥이 튀는 것을 막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계열 분리가 되면 동양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동양생명에 대한 사외이사 선임권까지 보고펀드로 넘어가게 된다. 동양그룹과 절연(絶緣)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