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대법원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배임·횡령 등 혐의에 대해 일부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 결정을 내리자 한화그룹은 안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룹 법무팀과 커뮤니케이션팀 등은 판결 내용을 분석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룹 내에서는 파기환송심 결과에 따라 김 회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해 '총수 공백' 때문에 차질을 빚었던 이라크 재건사업 등을 챙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왔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향후 충분한 소명 기회를 갖게 됐다"는 입장만 내놓았다.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반감을 우려한 듯 극도로 말을 아꼈다.

김 회장은 이날 서울대병원에서 변호인들로부터 재판 결과를 보고받았다. 김 회장은 현재 당뇨, 천식, 호흡곤란, 폐 기능 저하 등으로 입원해 진정제를 투여받고 있다.

'총수 공백' 따른 경영 애로 벗어나나

한화 내부에선 이날 대법원이 김 회장에 대한 핵심 혐의인 '부실계열사 채무에 대한 지급보증' 부분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을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였다. 일각에선 "서울고법에서 진행될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가 내려지면 김 회장의 경영일선 복귀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희망 섞인 관측도 제기됐다.

한화 김승연(가운데) 회장이 작년 7월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 현장을 방문해 현지 근로자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 회장이 실형을 받은 이후 한화는 사업 차질을 우려하고 있다.

한화는 그동안 김 회장의 공백이 국내외 대형사업 추진에서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고 밝혀왔다. 대표적으로 꼽는 것은 이라크 재건사업 추가 수주 건이다. 김 회장은 작년 5월 이라크를 방문, 누리 알 말리키 총리와 만나 80억달러 규모의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 계약을 수주했다. 당시 알 말리키 총리는 "한화는 이제 이라크 회사"라며 차후 진행될 720억달러에 달하는 추가 계약에서도 한화에 우선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작년 8월 김 회장이 구속되면서 추가 수주 여부가 불확실해졌다. 한화 관계자는 "김 회장 구속 이후 중국, 일본 업체들이 수주전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태양광 사업도 마찬가지다. 김 회장의 지시로 한화는 작년 8월 독일의 세계적인 태양광 셀·모듈 제조업체인 큐셀(Q-Cells)을 인수했고, 큐셀의 독일 탈하이 연구센터와 말레이시아 공장 등을 넘겨받았다. 한화 측은 "김 회장 부재로 독일, 말레이시아 정부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보조금 혜택 등이 지연되고 있다"며 "한화큐셀 말레이시아 공장 증설 계획도 당국의 지원을 끌어내지 못해 지지부진하다"고 말했다.

재계, "경영상 판단 처벌 아쉬워"

재계는 이번 판결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 회장의 배임 혐의에 대해 일부 무죄 취지 판결이 내려졌지만, '경영상 판단'도 배임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기존 판례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대법원이 '배임 혐의에 대해 재산상 손해가 났는지 등을 엄격하게 입증하라'고 한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경영상 판단도 처벌할 수 있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그동안 "배임죄는 범죄구성요건이 모호해서 '걸면 걸리는 범죄'"란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현행법상 배임죄는 미수(未遂)에 그치거나 현실적 손해가 발생하지 않아도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