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시간이 더 빨리 갑니다”

몇일 전 만난 GS 그룹의 한 관계자는 한 숨을 푹 내쉬었습니다. 주요 계열사인 GS칼텍스의 상황 때문입니다. GS 칼텍스는 2분기 영업이익이 전분기보다 19.9% 줄어든 1752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영업실적이 악화된데다 800억원에 이르는 환 손실 까지 겹친 탓입니다. GS(078930)의 주가도 올 들어 23% 떨어졌습니다.

설상가상 이라고 했던가요. 이런 상황에서 GS칼텍스가 일본 쇼와셀과 맺은 1조원 규모의 계약이 허공으로 날아갈 위기에 처했습니다.

GS칼텍스는 지난 4월 일본 쇼와셀과 함께 전남 여수에 연간 생산량 100만톤 규모의 파라자일렌 공장을 짓기로 했습니다. 파라자일렌은 나프타를 가공해 만든 석유화학제품의 중간 원료로 폴리에스테르 섬유나 페트병의 주 재료가 됩니다. 최근 중국, 인도를 중심으로 수요가 급증하며 값이 계속 오르고 있는 귀한 원료 입니다.

그러나 이 공장 설립은 벽에 부딪친 상황입니다. 법률상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자회사(지주회사의 증손회사)를 만들 때 지분 100%를 보유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GS는 GS에너지를 자회사로 두고 이 GS에너지가 GS칼텍스를 다시 자회사로 두고 있습니다. GS칼텍스는 GS의 손자회사가 되는 셈이지요. 이때문에 GS칼텍스는 100% 지분을 가지지 않으면 자회사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GS칼텍스는 자회사에 쇼와셀의 지분을 만들어 줄 수 없게 됩니다. 합작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셈입니다.
정부와 여당은 이 규정이 외국기업의 투자 유치를 막고 있다고 판단해 지난 6월 보유 지분율을 100%에서 '50% 이상'으로 완화하는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증손회사 규제를 풀어버리면 대기업 총수 등 지배주주가 적은 지분만으로도 여러 기업을 사유화할 가능성이 크고, 외국인 먹튀 자본이 생길 수 있다는 반대 의견이 나오면서 법안은 결국 산자위를 넘지 못했습니다. 최근에는 GS의 손자회사인 GS칼텍스가 아니라 GS에너지 등 중간 지주회사를 통해 합작법인을 세우라는 지적까지 나온 상황입니다.

그러나 파라자일렌 공정에 필요한 인력과 사업 부분이 모두 GS 칼텍스에 속해 있어, GS에너지에 관련 사업부를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GS칼텍스측은 얘기합니다.

이런 논의 과정을 지켜 본 일본 쇼와셀은 오는 10월까지 사업의 성사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을 GS칼텍스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악의 경우 공장 신설을 추진하려던 당초 계획이 취소되고, 중국 등으로 쇼와셀의 투자를 뺏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GS칼텍스와 쇼와셀의 투자규모는 각각 5000억원씩 총 1조원 가량입니다.

사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외촉법의 통과 가능성은 상당히 높았습니다. 그러나 국회가 공전되면서 이런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 상태입니다. 10월은 점점 다가오는 데,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GS그룹 관계자의 말이 괜한 넋두리로 들리지만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