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위험 중수익'이란 타이틀을 내걸고 잘나가던 주가연계증권(ELS)이 위기를 맞고 있다.
ELS란 기초자산(종목이나 지수)의 주가가 만기까지 일정 범위 내에 머물면 약속된 수익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발행 조건은 제각각이지만 원금 비보장형은 기초자산의 주가가 50~60% 이상 급락하지 않으면 대체로 손실을 보지 않게 돼 있다.
최근 ELS의 위상이 흔들리는 것은 무엇보다 손해를 보는 상품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2010년 발행된 ELS들이 줄줄이 원금 손실 상환된 데 이어 투자자들이 ELS를 신뢰할 수 없게 만드는 사건마저 터졌다. 은행이 유사 상품을 발행할 수 있게 된 것도 악재 가운데 하나다.
◇올 상반기 400여개 손실 상환 추정
12일 증권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올 상반기 원금 손실 난 채 만기 상환된 ELS는 대략 400개 안팎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종목형이 문제였다. 2011년 최전성기를 구가했던 LG화학, 금호석유화학 등 화학주와 당시만 해도 그나마 양호했던 건설과 조선, 해운주 등에서 원금 손실 상환이 많이 발생했다. 일부 사모 ELS는 원금이 거의 사라진 상태로 상환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는 더 문제다. 업종별 차별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데다 금, 은 등을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결합증권(DLS)이 발행 직후 곧바로 손실 구간을 찍는 등 고전하고 있어서다.
동부화재, STX팬오션을 기초자산으로 두고 있는 S증권사 3896회 ELS는 발행 후 올 상반기까지 88.6% 손실이 나고 있다. 한 코스닥기업은 이 ELS에 20억원을 투자했다가 17억7200만원을 손해 보고 있다. 이 기업은 GS건설, 대우증권을 기초자산으로 한 또 다른 ELS에서도 80%에 가까운 손실을 봤다.
◇CLSA 주문 실수로 ELS 신뢰도 타격 불가피
이 와중에 '수익률을 조작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한 사건까지 터졌다.
외국계증권사인 CLSA가 KB금융 주식에 대량 매도 주문을 내면서 KB금융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대우증권의 공모 ELS 하나가 손실 구간에 진입했다. 이 ELS는 KB금융 주가가 내년 2월까지 3만1661원을 밑돌지만 않으면 57% 수익을 낼 수 있었으나 결국 20% 손실을 본 채 상환될 위기다. CLSA 측은 주문 실수라고 밝혔으나 투자자들은 "CLSA가 고의적으로 KB금융 주가를 떨어뜨린 게 아닌지 조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CLSA가 고의였든 아니든 일단 ELS 시장에는 악재가 될 전망이다.
한 증권사의 파생상품 설계 담당자는 "주문 실수 때문에 3년 농사를 한순간에 망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투자자들이 더 조심스럽게 접근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은행이 유사 ELS 발행하는 것도 부정적
마침 은행이 유사 상품을 만들 수 있게 된 것도 ELS엔 부담이다.
지난달 29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에서는 원금 보장형 ELS를 파생결합증권이 아닌 채무증권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증권사 아닌 은행에서도 비슷한 상품의 발행이나 판매가 가능하다.
이중호 동양증권 연구원은 "오랜 저금리로 은행 또한 ELS 유사 상품 발행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며 "만약 실제 발행에 나서게 된다면 증권사나 ELS엔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관계자 중 일부는 최근 교직원공제회가 원금 보장에 최대 10.1% 수익을 주기로 한 주가지수연동예금(ELD)이 유사 ELS라고 보고 있다. 다만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증권업계나 ELS 상품 자체로는 부담이지만 투자자들 입장에선 선택지가 많아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