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바람이 분다 ㅣ 미야자키 하야오
일본 정치권에서 위안부 관련 망언이 잇따라 나오고 있고, 역사 왜곡과 독도 문제 등 한·일(韓·日) 갈등이 고조되는 지금은,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5년 만에 내놓은 작품 '바람이 분다'를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상황은 분명 아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진작 사과했어야 한다"고 말하는, 일본 극우파의 역사 인식을 비판하는 지식인이지만, '바람이 분다'를 보면 결국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생각나는 대로 적는다면 영화에는 "우리는 무기상이 아니라 그저 좋은 비행기를 만드는 것이다", "비행기는 전쟁을 위한 것도 판매를 위한 것도 아니다. 그저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면 된다"는 대사들이 나오는데, 대사와 함께 폭격 당해 불타고 스러지는 비행기 아래의 장면을 보고 있자면 묘한 기분이 든다.
"시대와 함께 살아가던 그들을 옳다, 그르다 평가할 수 없다"고 말한 미야자키 감독의 사상이 반영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을 강제 수용소로 수송한 행위도 유대인 학살에 간접 참여한 것으로 여겨 처벌하는 프랑스 등 다른 유럽 국가의 역사 인식과 매우 다르다는 점에서 적지 않게 씁쓸하다.
바람이 분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주력 전투기였던 '제로센(零戰)'을 설계한 실존 인물 '호리코시 지로'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비행기 설계자를 꿈꾸는 소년 지로는 열차에서 소녀 '나호코'를 만난다. 거대한 지진이 발생하며 지로는 나호코를 도와주고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헤어진다. 그리고 10년 후. 비행기 설계자가 된 지로와 나호코는 바람이 부는 언덕에서 운명적으로 다시 만난다.
미야자키 감독은 "사랑에 대한 확고한 마음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지만, 러브스토리보다는 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전쟁의 참상이 머릿속에 더 오래 남는다. 지로의 꿈에 나타나 그의 꿈을 응원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은 카프로니 백작의 마지막 대사도 거북스럽다. 이탈리아 비행기 제작자로 알려진 그는 불바다가 된 전쟁터 위에서 저공 비행하는 비행기들을 보며 "꿈의 동산과 지옥은 같다"고 말한다.
적어도 한국 관객들에게는 큰 감동을 주기 어려울 것 같다. 9월 5일 개봉. 전체관람가. 126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