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선 딜로이트안진 부대표.

'돈', '사업', '실패'.

김주선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부대표는 회사 경리 직원의 메신저에 이런 단어가 최근 들어 갑자기 많아졌다면 횡령 같은 문제가 생길 가능성을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부대표는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의 포렌직(forensicㆍ범죄 과학수사) 부문을 이끌고 있다. 김 부대표는 "내부 제보로 횡령 사건을 조사해보면 문제를 일으킨 직원의 애인이나 가족이 최근에 사업에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며 "그런 직원들의 메신저 같은 컴퓨터 이용 기록을 분석해보면 돈, 사업, 실패 같은 키워드가 많이 보이는데 이런 부분을 파고들어서 문제를 해결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포렌직은 회계법인보다는 검찰이나 경찰에 어울리는 용어다. 최근에도 포렌직은 국정원 국정감사에서 이슈가 됐다. 흔히 포렌직은 범죄 과학수사를 의미하는데, 최근에는 법정 근거 자료로 제시되기 위한 과학적인 증거 수집 및 분석 활동 전반을 일컫는 용어로 쓰인다.

딜로이트 안진이 제공하는 포렌직 서비스도 검찰이나 경찰의 포렌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딜로이트 안진은 검찰청의 외부 포렌직 전문기관으로 지정돼 있어 검찰과 함께 일할 때도 있다. 김 부대표는 "직원의 횡령 같은 기업 내부 부패나 문제를 조사하는 기업조사나 소송에 대비한 증거 자료 정리 업무가 우리가 제공하는 주된 포렌직 서비스"라며 "최근에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컨설팅을 제공하는 데이터분석 서비스도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소송에 대비해 증거 자료를 정리해주는 포렌직 업무가 주목받았다. 한국 기업과 글로벌 기업간의 특허 싸움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공방을 필두로 전 세계 주요 기업들이 특허를 놓고 싸우고 있다. IT 분야에서 앞서 있는 삼성전자, LG전자, SK하이닉스, 코오롱 같은 한국 기업들도 이런 특허 분쟁의 타겟이 될 수밖에 없었다. 김 부대표는 "삼성전자와 애플이 스마트폰 특허를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는데,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휴대폰 사업에 뛰어든 이후의 모든 기술 개발이나 회의록 등을 분석해야 할 것"이라며 "이런 업무를 도와서 증거 자료를 찾아내고 정리해 소장을 만드는 법무법인으로 전달해주는 것이 우리가 하는 포렌직 업무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김 부대표는 "최근 2년 사이에 국제 특허 소송이 어마어마하게 증가하면서 포렌직 업무에 대한 기업 수요도 늘고 있다"며 "특히 한국에서 제대로 된 포렌직 업무를 제공할 수 있는 회계법인은 우리밖에 없기 때문에 한국 기업들의 수요가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워낙 다양한 업무를 맡다보니 포렌직 서비스 팀의 구성도 일반 회계법인 같지가 않다. 현재 딜로이트 안진 포렌직팀에는 30명 정도의 인력이 배치돼 있는데, 회계사뿐만 아니라 빅데이터 분석 전문가, 컴퓨터 전문가 같은 IT 전문가와 법률 전문가들도 함께 일하고 있다.

딜로이트 안진 포렌직 부문의 실적도 빠르게 좋아지고 있다. 포렌직 부문은 재무자문 본부 아래 있는데 전체 재무자문 본부 매출에서 포렌직이 차지하는 비중이 20%로 1년 사이 두배 증가했다. 김 부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보면 포렌직 부문이 재무자문 서비스 매출의 50% 정도를 차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한국은 아직 포렌직 서비스가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포렌직 서비스 매출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부대표는 빅데이터를 분석해 기업에 알맞은 경영 컨설팅을 해주는 데이터분석 서비스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기업의 모든 자료들이 디지털로 저장되고 있기 때문에 갈수록 빅데이터 분석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는 월마트 냉장고 구매팀을 예로 들었다. 김 부대표는 "월마트에는 전 세계에서 냉장고만 전문적으로 구매하는 팀이 있는데, 이들은 환율, 제품 가격, 운송 경로에 따른 비용, 브랜드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어떤 냉장고를 언제 사서 어떻게 미국으로 가져올지 고민하고 있다"며 "이런 노력만으로 비용 절감 효과가 그동안 1조원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김 부대표는 포렌직 서비스 강화가 곧 전통적인 회계법인 업무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김 부대표는 "포렌직 업무들은 사실 모두 컨설팅 업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며 "회계법인들이 전통적인 회계업무에 법률자문, IT 서비스까지 책임지는 시대가 열린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