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앤아트스페이스 전경

경기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150-7. 서울 광화문역 주변에서 광역 버스를 타고 1시간여를 가니 '백남준 아트센터'와 함께 건축가 조성룡(70)이 2008년 설계한 '지앤아트스페이스'를 만날 수 있었다.

완만한 언덕에 있는데다 짙은 감색 커튼월 건물인 백남준 아트센터는 묵직하고 웅대한 느낌이지만, 지곡천(川)을 앞에 두고 참나무 숲에 둘러싸인 지앤아트스페이스는 움푹 팬 대지에 옹기종기 모인 작은 마을 같았다.

나지막한 야산에 4324㎡(약 1000평) 규모로 들어앉은 지앤아트스페이스는 곁에 있는 백남준 아트센터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설계됐다. 백남준 아트센터는 단일 건물을 놓고 그 안에 공간을 구성했다. 지앤아트스페이스는 출입구가 분명치 않고, 카페·레스토랑·도예공방·리빙숍·화원·어린이창작스튜디오·갤러리·가마실 등의 공간이 대지 위에 놓인 몇몇 건물 몸체에 자리하고 있다.

지앤아트스페이스 전경.

도로에서 지앤아트스페이스로 진입하면 각 공간은 노출 콘크리트로 구성된 골목을 지나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도록 설계돼 있다. 한눈에 들여다볼 수도의 규모지만, 시선을 옮길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느껴지는 곳이다.

지하로 통하는 계단으로 내려가면 네모 반듯한 인공 연못이 있는 레스토랑이 나오고, 갤러리가 있는 건물 뒤편으로 가면 삼삼오오 모여 도자기를 빚는 사람들이 보인다. 갤러리 곁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아기자기한 리빙숍과 어린이들이 만든 형형색색의 재미난 도예작품이 눈에 띈다.

수십 그루의 자작나무 길로 돌아나가면 아트숍과 카페가 나온다. 왔던 길을 뒤로 돌아나가면서도 새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조성룡은 이 건물로 2009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받았다.

조성룡은 1966년 인하대 건축공학과를 졸업, 1975~1994년 우원 건축 대표를 지냈고, 1995년 조성룡도시건축를 세웠다. 2007년 성균관대 석좌교수에 올랐고, 2001년 의재미술관으로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 2003년 서울 선유도공원으로 한국건축가협회상, 김수근 문화상, 서울시 건축상을 휩쓴 현 건축계의 명장이다.

◆ 버려진 산업시설을 시민의 휴식처로, 선유도공원

건축가 조성룡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지만, 조경가 정영선과 그가 설계한 '선유도공원'은 주말이면 하루 평균 4만여명이 찾는 서울 명소다.

선유도공원 전경.

영등포구 양화동에 속한 선유도공원은 사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1978년부터 2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서울 서남권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정수장이었다. 총 11만400㎡ 규모의 선유도는 1999년 시(市)의 한강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총 164억원이 투입돼 정수장에서 재활용생태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선유도공원를 가는 방법은 2가지다. 지하철 9호선 선유도역에서 내려 한강 쪽으로 가서 구름다리 형태의 선유교를 통해 가는 방법, 승용차나 버스 등을 이용해 양화대교에서 진입하는 방법 등이다. 선유교를 통해 진입하면 선유도 전망대와 과거 정수시설로 이용되던 원형공간이 나온다. 환경교실, 환경놀이마당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또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의 카페는 과거 취수펌프장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동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시간의 정원·녹색기둥의 정원·디자인 서울 갤러리·환경물놀이터·수질 정화원 등등이 차례로 나온다. 특히 녹색기둥의 정원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이다. 성인 남성의 키를 훌쩍 넘기는 30개의 콘크리트 기둥을 타고 자란 담쟁이덩굴이 기이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 기둥들은 정수지 공간의 상판만 들어내고 남은 것들이다.

이용원 선유도공원 관리 소장은 "최근에는 여름이다 보니 수생 식물원과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에 사람이 많은 편"이라며 "아침에는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고 야간에는 전망대가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건축적으로 선유도공원의 가장 큰 특징은 과거 정수장이었던 흔적을 지우지 않고 변용했다는 점이다. 크게 수질정화원·녹색기둥의 정원·수상식물원·시간의 정원 등 4개 권역으로 나뉘어 있는 공원은 예전 정수장 시설의 자취가 남아 있다. 과거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거대 시설과 풀과 나무, 호수과 연못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모습은 단순 철거 방식의 건축보다 더욱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조성룡은 "선유도공원 계획은 시간에 따라 변화된 땅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구성한 작업"이라며 "한때 산업시설이었던 구축물조차 땅의 일부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실제 선유도 공원은 산업사회의 건축적 산물을 현대의 것으로 변용한 국내 첫 사례다. 선유도공원 사업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과 평가가 이어지면서 철거 대상에 오른 산업 유산의 리모델링에 대한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임석재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는'서울, 건축의 도시를 걷다2'의 저서에서 "근대화의 주요 공신이었지만 혐오시설로 남기 쉬운 산업화 시대의 잔재를 매력적인 생태공원으로 살려냈다"며 "선유도공원은 근대화 시기 개발의 미덕을 후기 근대화 시기 문화의 미덕으로 이어주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 어린이대공원의 필수 방문 코스, 꿈마루

서울 광진구 능동의 '어린이대공원'의 방문자 센터로 활용되고 있는 꿈마루는 조성룡과 최춘웅 고려대 교수가 2011년 리모델링한 건물이다. 원설계자는 해방 이후 그랜드호텔, 새나라자동차 부평공장, 경기도청사 등을 설계한 나상진(1923~1973)이다. 그는 어린이대공원의 전신인 골프장 '서울컨트리클럽'이 조성된 이후 클럽하우스 용도의 건물을 맡아 1968년 설계·시공했다.

어린이대공원 꿈마루.

조성룡이 이 건물의 리모델링을 맡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근대건축가인 나상진은 잘 알려지지 않은 건축가였다. 한국의 현대건축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김중업·김수근 이전의 건축가에 대한 연구 및 사료 보존이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김종헌 배재대 교수는 "꿈마루(구 서울컨트리클럽하우스)는 12.5mX25m 규모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로 이루어진 공간을 가운데가 비어 있는 4개의 사각형 쌍기둥을 통해 이뤄냈다"며 "김수근의 합리주의적 조형성과 김중업의 낭만주의적 조형성을 결합시켜 형태와 공간 그리고 구조를 하나의 건축물을 통해 완벽하게 통합해낸 나상진의 대표작"이라고 평가했다.

나상진의 서울컨트리클럽하우스는 1972년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진행된 어린이대공원 조성사업으로 인해 '교양관'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용도는 식당이나 전시공간, 관리사무소 등으로 명확한 개념 없이 사용됐다. 즉 이 건물은 서울컨트리클럽하우스-교양관-꿈마루로 이름이 두 번 바뀌었다.

조성룡의 꿈마루 작업은 선유도공원의 그것과 궤를 같이한다. 단순히 대지에 건물을 올리거나 고치는 설계 작업이 아니라, 대지와 기존 건물에 쌓인 시간의 켜를 헤아리고 현대적 의미의 재창조를 시도하는 것이다.

조성룡은 꿈마루를 두고 '리모델링(remodeling)'이 아니라 '리버빌리테이션(재생·rehabilitation)'이라고 규정했다. 즉 낡은 건물을 고치는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더한다는 것. 그는 "재생은 친환경 측면뿐 아니라 건축물에 담긴 이야기와 역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꿈마루를 방문해보면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리모델링 후의 깔끔함은 없다. 오히려 어디를 어떻게 리모델링했는지 일반 사람들은 알기 어렵다. 구조를 보강하거나, 페인트칠을 새로 하는 방식의 리모델링이 아니라 현재 어린이대공원 방문자센터로서의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으면서도 과거 이 건축물이 지녔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공간 구성이 작업의 핵심이었다.

조성룡은 이 작업을 두고 "새로 필요한 시설은 기존 건물 내부에 삽입하고 중심 공간을 비워 외부공간으로 변경했다"며 "공원 전체 동선과 이 공간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김미상 건축사가는 "본 건축물의 구조와 구성을 존중함과 동시에 어린이대공원 측이 필요로 한 공간을 배치함에 있어 규칙을 발견할 수 있다"며 "각 공간은 적절한 높이와 규모에 따라 계획돼 평면상·3차원적으로 어느 정도 복합적이지만, 명확하게 공간의 분리·연결을 이뤄내고 있어 흥미롭고 재미있는 공간군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꿈마루는 어린이대공원을 찾는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쉬거나 도시락을 먹는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박물관에서나 느껴지는 묵직한 공간감과 탁 트인 공원을 내다볼 수 있는 전망대의 개방감을 동시에 지닌 명소가 됐다.

백공명 꿈마루 관계자는 "시민에게 공간을 개방하기 위해 공간을 비운 것과 건물 건립 초기부터 40년의 세월까지 모두 보전해 시민에게 역사를 보여주는 취지가 좋은 것 같다"며 "근대 건축물을 문화재 차원으로 보존 및 재사용하려는 노력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