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순환도로를 가다 정지신호에 멈춰 섰을 때, 앞뒤로 선대(先代) E클래스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앞에는 동그란 네 개의 눈과 둥근 엉덩이를 가진 8세대 E클래스가, 룸미러 저편으로는 네 개의 네모난 눈과 한층 각진 몸체를 한 바로 직전 세대 E클래스(9세대)가 보였다. 타고 있던 차량은 지난 6월 말 한국에도 출시된 '더 뉴 E클래스'. 10세대 모델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9세대보다 확연히 젊어진 디자인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5년여 사이에 메르세데스-벤츠의 디자인은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할 만큼 변했다. 특히 E클래스가 그렇다. 벤츠의 주력 세단은 크게 C클래스, E클래스, S클래스로 구분되는데, C는 소형(Compact), E는 중형(Executive Salon), S는 대형(Super Salon)을 뜻할 뿐 특별한 의미는 없다. 그런 '중형세단' E클래스에 유독 고급스러움(Elegance)이라는 찬사와 온갖 기대(Expectation)가 지워지는 것은, 역대 벤츠 모델 중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대표 차종이기 때문이다.
더 뉴 E클래스의 가장 큰 변화는 '눈'에 해당하는 헤드램프에서 바로 알아볼 수 있다. 과거 양쪽 각각 두 개의 램프로 구성했던 방식 대신, 하나의 큰 헤드램프를 LED(발광다이오드)로 구획을 나눴다. 마치 멀리서는 네 개의 램프처럼 보이도록 표현한 것이다. 최신 유행하는 LED 램프로 선명한 눈매를 표현하면서도, 뭔가 젊어 보이게 달라졌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마치 쌍꺼풀 수술을 한 것 같은 느낌이다.
이 램프에는 남다른 기능도 숨어 있다. '풀(Full) LED 인텔리전트 라이트'라는 긴 이름의 헤드램프는 야간에 상향등 상태였다가 상대편 운전자가 다가올 때 순간적으로 그 부분만 LED 조명을 꺼뜨려 피해를 주지 않는 기능이 들어 있다. 또 어둡고 굽은 시골길에선 빛을 쏘는 각도와 양을 늘려 시야를 확보하는 '컨트리 모드'로, 시속 90㎞ 이상으로 내달릴 땐 빛을 평소보다 멀리까지 쏘아 돌발 장애물을 식별하는 '모터웨이 모드' 등 6가지 기능도 있다. 벤츠를 비롯한 유럽 고급차 업체들이 램프 기술에서 앞서는 것은, 어둑한 교외 길을 달릴 일이 많아 램프의 실력 차가 곧바로 드러나는 환경 때문이다. 신형 벤츠의 램프 기능이 한국 도심에선 크게 발휘될 일이 없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E클래스 중 국내에서 가장 사랑받는 모델은 3.5L 가솔린 엔진을 단 E300이다. 디젤차 열풍 속에서도 "고급차는 역시 가솔린이지"라고 생각하는 보수층에 꾸준한 지지를 받고 있다. 최고 252마력의 힘을 낸다. 공인연비는 10.3㎞/L로 종전 대비 1km/L 가까이 향상됐다.
거동은 역시 묵직한 편이다. 운전대를 잡은 운전자의 재미를 최우선으로 만든 최대 경쟁자 BMW 5시리즈와는 다른 점이다. E300에는 '엘레강스'(6780만원)와 '아방가르드'(7060만원) 모델 두 가지 타입이 있는데, 엘레강스는 세 꼭지별 엠블럼이 보닛 위로 얌전히 올라가 있는 예전 방식 그대로, 아방가르드는 대형 엠블럼이 공기 흡입구 그릴 위에 떡하니 자리 잡은 모습이다. 벤츠의 고급스러움을 소유하고픈 젊은 소비자에게 어필하려는 벤츠의 전략이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