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핵융합 연구장치

‘인공 태양’ 연구가 가속화하고 있다. 핵심 기술은 핵융합 발전이다. 핵융합 에너지는 화석연료나 원자력발전의 대체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08년 3월 6대 국가미래기술로 선정하기도 했다. 인공 태양이 상용화하면 에너지 부족과 대기오염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핵융합 발전의 원료는 바닷물과 리튬이다. 리튬의 매장량은 충분하다. 핵융합연료 1g으로 석유 8t의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도 없다. 방사성 폐기물은 원자력발전의 0.04%에 불과하다.

국내외 에너지 전문가는 국내 핵융합 연구장치의 설계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국가핵융합연구소(NFRI)는 2008년 6월 핵융합 연구장치를 첫 가동했다. 국내 순수 제작 기술로 이뤄낸 쾌거였다. 핵심부품인 초전도자석의 고장이 없었다. 잦은 고장 탓에 악명 높은 초전도자석이 정상 가동한 것은 세계 최초였다.

인도의 핵융합 연구장치는 2004년 가동된 이래 10년 동안 초전도자석를 반복 수리해야 했다.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의 입자가속기(LHC)도 2008년 첫 운전에서 고장 났다. CERN은 우주 탄생의 비밀을 풀 ‘힉스입자(Higgs bosson)’를 발견한 연구소다. 이제 국내 핵융합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 NFRI 핵융합 장치, 발전량·효율 면에서 세계 최고

핵융합의 원료는 중수소와 삼중수소다. 중수소는 바닷물의 전기분해, 삼중수소는 리튬에서 얻는다.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플라즈마 형태로 만든 뒤 이들이 부딛치는 과정에서 열이 발생한다. 플라즈마는 고체, 액체, 기체가 아닌 제4의 물질상태로 고온·고압의 에너지를 기체에 가해 만들어진다. 핵융합 발전은 플라즈마 상태에서 발생하는 열에너지를 활용해 전기를 양산한다.

KSTAR의 내부모습(토카막)

NFRI의 초전도핵융합 연구장치(KSTAR)는 비슷한 크기의 핵융합로보다 전기생산량이 많다. 일반 핵융합로와 달리 합금형 초전도체(Nb³Sn)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합금형 초전도체는 자기장을 2배 이상 키워 장치 안의 플라즈마를 늘렸다. 플라즈마가 커지면 발전량도 늘어난다.

전 세계에서 핵융합 연구장치에 합금형 초전도체를 사용하는 곳은 한국과 중국뿐이다. KSTAR의 효율은 중국보다 우수하다. 오영국 국가핵융합연구소 부센터장은 “중국이 2년 앞서 연구장치를 개발했지만 핵심 기술에서 우리가 낫다”며 “미국과 유럽 등 연구기관으로부터 견학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NFRI은 2003년 6월부터 국제 핵융합로 사업(ITER)에 참여하고 있다. ITER은 세계 7개국 합작 프로젝트다.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EU), 일본 등 핵융합 연구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ITER는 KSTAR의 초전도체와 고성능 플라즈마 밀폐 상태 기술(H-모드)을 채택했다. 진공용기, 전력공급 등 핵심품목 10개도 국내 기술 제품이다.

◆ 벤처기업에서 글로벌기업으로…국내 기업 기술력 앞서

국내 기업의 핵융합 장치 제작역량도 탁월하다. 국내 90여 개 기업이 ITER에 참여한다. 현대중공업은 작년 11월부터 ITER의 진공용기 본체 및 포트를 제작하고 있다. 진공용기는 플라즈마 밀폐 환경을 만드는 핵심장치다. 현대중공업은 2017년 ITER의 설치장소인 프랑스 남부 카다라쉬에 납품한다.

현대중공업은 일본 국립핵융합연구소에서 6000만달러 규모의 진공용기를 감싸는 외부 구조물(TFCS)의 제작을 주문받았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국내 핵융합 시설 플랜트 기술이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어 세계 핵융합 발전 시장을 선점할 것”으로 기대했다.

중소·중견기업도 핵융합 시장에 활발하게 진입하고 있다. 고려제강 자회사 KAT, 넥상스코리아, 다원시스 등이 대표사례다. KAT는 초전도선재, 넥상스코리아는 초전도선재 케이블을 제작·공급한다.

다원시스의 핵융합 전원장치

다원시스는 지난 1996년 1월 설립돼 핵융합 전원장치를 연구했다. 국내 핵융합 전원 장치는 다원시스만이 공급하고 있다. 다원시스는 2011년 8월 ITER의 초전도 전원장치 38%를 공급하기로 계약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476억원이다. 올해 목표는 600억원이다. 중국·일본향 수출이 늘어나고 있다. 박선순 다원시스 대표는 “2011년 ITER에 참여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기회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도 핵융합 에너지 상용화에 적극 나섰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올해 핵융합 연구개발에 1516억원을 투자한다고 7월 발표했다. 해당 예산은 고성능 플라즈마 기술 연구와 핵융합 전문 인력 양성 등에 투입된다. 미래부는 2021년까지 핵융합 발전의 기반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 전 세계 시장 8000억달러…"재정 추가 투입과 전문인력 확충 시급"

전 세계 핵융합 발전 시장은 8000억달러로 추산된다. 발전소 설계, 엔지니어링, 운전·보수, 부품 산업까지 합치면 시장 규모는 3배 이상 커진다. 국내 기술은 경쟁 국가와 비교해 뒤지지 않는다. 에너지 수입 4위 국가 한국이 에너지 수출국이 될 수 있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핵융합 발전의 파생 산업은 많다. 핵융합은 초전도자석과 전원공급시스템 설계·제작, 진공 밀폐 등 10여 가지 기술로 구성되다 보니 산업 전후방 효과가 크다. 반도체, 기계가공, 의료기제작, 전력송출, 에너지 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한편 핵융합 발전은 상용화까지 넘어야 할 산이 있다. 고성능 플라즈마의 장시간 유지 기술이 필요하다. 자기장을 제어해 높은 성능의 플라즈마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기술은 핵융합 발전의 안정성 제고에 필수다. 1억 ℃ 초고온과 고에너지 플라즈마 속에서 견딜 수 있는 재료도 만들어야 한다. 오영국 부센터장은 “핵융합장치의 장시간 유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 국가 재정의 추가 투입과 전문인력의 보충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