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규슈 구마모토(熊本)현 '구마모토 테크노 리서치 파크'. 후지쓰(富士通), 르네사스 마이크로시스템 등 IT기업 연구소 사이에 가지쓰도(果実堂) 본사가 있다. 본사 2층 칸막이 하나 없이 탁 트인 230㎡(70평) 정도의 사무실에서 직원 10여명이 컴퓨터 작업을 벌인다. 여느 IT기업처럼 모두 자유복 차림이다.

실상을 알고 보면 이 기업은 농업회사다. 본사 인근 330만㎡(100만평)에 이르는 경작지에서 일본인이 좋아하는 어린잎 채소를 재배한다.

◇SW가 운영하는 농업

이 회사 근처 비닐하우스. 24세 직원 겸 농부인 다카키 쇼마(高木翔真)가 왼손에는 태블릿 PC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어린 채소잎을 만져보고 있었다. 30초 정도 후 그는 태블릿PC 화면 하단에 '크기 2㎝, 벌레 먹은 정도는 양호'라고 메모했다. 화면 상단에는 오늘 줘야 할 물의 양, 비료의 양 등 작업 지시 사항이 표시돼 있었다.

일본 농업 회사인 가지쓰도 직원이 비닐 하우스에 설치된 데이터 센서를 가리키고 있다. 이 센서를 통해 이산화탄소 등의 정보를 읽어내고 이를 본사에 전송한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지상에서 20㎝ 높이에 두 개의 흰 박스가 천장에 연결된 줄에 매달려 있었다. 박스 하나에는 온습도계가, 다른 하나에는 이산화탄소(CO2) 측정센서가 들어 있다. 이곳에서 24시간 측정된 데이터는 입구 쪽에 설치된 가로 30㎝, 세로 50㎝ 크기의 컨트롤 박스로 보내진다. 이 박스에 무선송신기가 달려서 데이터를 가지쓰도 본사로 전송하며, 이 데이터가 다시 다카키씨의 태블릿 PC에 뜬 것이다. 더 나아가 이 회사는 전국 수백개 판매현장의 재고까지도 실시간 관리한다. 이 모든 과정은 후지쓰가 개발한 '아키사이(秋彩)'란 소프트웨어에 의해 진행된다.

고노 준코(河野淳子) 업무추진센터장은 태블릿PC를 통해 도쿄 오케이스토어(편의점)에서 팔리는 '가지쓰도 시금치'의 재고량을 확인하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유통 현장의 재고량을 파악해, 생산·출하·물류 스케줄을 짠다. 이데 쓰요시(井出剛) 가지쓰도 사장은 "농장 운영도 소프트웨어의 도움으로 도요타 자동차 공장처럼 표준화할 수 있었다"며 "이를 통해 농업생산성을 20% 올렸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덕에 농업에서도 생산부터 출하까지 관리하는 지트(JIT·Just In Time) 시스템이 가능해진 것이다.

SW 덕에 농사에 문외한인 도시인들도 최고의 전문가들이 축적한 영농기법을 실행할 수 있다. 다카키씨 역시 2009년 7월 가지쓰도에 입사하기 전엔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미장공으로 일하다가 어린잎 채소 농업이 장래성이 있다는 생각에 입사했다"며 "아키사이 프로그램 지시만 따르면 농사일에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SW가 산업판도 바꾼다

소프트웨어 산업을 SI(시스템통합)나 게임 프로그램 짜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한국과는 달리, 선진국에선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이 농업은 물론 미디어·건축 등 기존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미국 팰로앨토시 중심부 유니버시티 애버뉴에 있는 튠인(Tune IN)의 내부 사무실. 지정석 없고, 일도 서서하거나 앉아서하거나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식사시간을이용한 소프트 인력 스카우트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자, 이 회사는 하루 세 끼를 모두 제공하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팰로앨토시 중심부 유니버시티 애버뉴. 튠인(Tune IN)사는 전 세계 8만개 라디오 방송국과 제휴, 청취자 4000만명에게 원하는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예컨대 싸이의 방송 프로그램을 듣고 싶을 때 청취자는 튠인의 프로그램을 깔고 난 뒤 '싸이'로 검색하면 전 세계에서 싸이의 노래가 방송 중이거나 방송될 프로그램의 리스트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노래뿐만 아니다. 뉴스, 토크쇼, 스포츠까지 망라한다.

이 거대한 방송국의 직원은 80여명에 불과하다. 이 중 방송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 소프트웨어 기술자와 마케팅 전문가들이다. 라디오와 같은 전통 미디어조차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이 운영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 파리 근교 볼로뉴 숲에는 새로운 명물이 들어서고 있다. 올 연말 완공을 앞둔 '루이뷔통 창조재단 미술관'이다. 총건축비는 1억4300만달러에 달한다.

이 미술관은 구겐하임 미술관을 건축했던 프랭크 게리(84)가 설계를 맡았다. 그는 '게리 테크놀로지(GT)'란 건축설계 소프트웨어 회사를 만든 뒤 다소시스템의 3D 솔루션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협업 시스템인 '디지털 프로젝트'를 개발했다. 미국 LA에 있는 건축가들이 현 공정률에 따라 3D 건물도면을 작성하면 영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에 있는 건축가들이 동시에 이 도면 위에 자신들의 디자인을 보태는 식이다. 15개 전 세계 설계팀이 물 흐르듯 협업함으로써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