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상장사 아이에이(옛 씨앤에스테크놀로지)의 전 대표이사 서모씨는 횡령 의혹으로 대표이사직 해임이 확정되자 해임 하루 전날인 지난해 3월 12일, 문방구에서 약속어음 용지를 구입한 뒤 회사 법인 인감을 찍고 공증을 해 채권자들에게 나눠줬다. 회사가 한순간에 손해액 90억원을 떠안아야 했던 순간이다. 아이에이는 최근에야 이 어음이 불법이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문방구 어음'에 우는 상장사가 늘고 있다.

문방구 어음이란 문방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어음 증서로 발행한 약속어음이다. 은행을 끼고 발행하는 은행어음과 달리 쉽게 발행할 수 있다.

문제는 어음 보유자가 스스로 밝히지 않는 이상 문방구 어음의 존재를 회계 법인이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문방구 어음으로 소액 주주들이 피해를 보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코스닥 시장 선진화 방안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문방구 어음 단속을 꼽고 있다.

문방구 어음 탓에 상장폐지 속출

러시아, 중국 등에 위조지폐 감별기를 팔아 매출 278억원(지난해 기준)을 올렸던 에스비엠은 문방구 어음 발견으로 상장폐지되는 상황을 맞았다. 기업 사냥꾼에게 인수됐던 에스비엠은 이후 투자자를 물색해 정상화 과정을 밟고 있었지만 전 최대 주주들이 82억5000만원 규모 문방구 어음을 발행했음이 뒤늦게 드러났다.

최근 1~2년간 문방구 어음이 갑작스레 발견됐거나, 어음 보유자와 소송으로 헛심을 쓴 상장사는 이외에도 에이스하이텍, 나이스메탈, 티웨이홀딩스(아인스), 에스아이리소스, 르네코, 테라리소스 등 상당수다.

상장폐지된 곳도 많다. 2012년 전후로만 나이스메탈을 포함해 씨모텍, 대한은박지, 세븐코스프, 평안물산, 티엘씨레저, 국제개발, 에듀패스 등이 문방구 어음 등의 영향으로 상장폐지됐다.

문방구 어음이 퇴출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이 때문에 하나라도 발견되면 회계 법인이 감사 의견을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한 회계사는 "기업을 망치는 경영인이 마음대로 써주면 그만"이라며 "이 때문에 문방구 어음이 단 한 장만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불확실성' 때문에 감사 의견을 줄 수가 없다"고 전했다.

에스비엠도 마찬가지였다. 회계 법인 측이 "문방구 어음이 또 있을 수 있다"며 감사 의견 거절 결정을 내렸다. 에스비엠은 전 최대 주주가 289억원을 횡령하는 사건(혐의)도 있었는데, 이것보다 문방구 어음이 감사 의견 거절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문방구 어음이 기재된 금액 그대로 지급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아이에이, 테라리소스, 티웨이홀딩스 등은 소송 끝에 문방구 어음 발행이 불법이었음을 입증했다.

합의하는 사례도 있다. 에스아이리소스, 에이스하이텍 등이 이런 경우. 에이스하이텍은 지난 2009년 발행된 문방구 어음이 지난해 청구됐는데, 합의금을 지급하고 사건을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에이스하이텍은 기타 손실로 73억3300만원을 반영했다.

피해 줄이려면? 최대 주주 도덕성 꼼꼼히 살펴야

금융 감독 당국도 문방구 어음의 폐해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 한 관계자는 "상장폐지된 기업이 회생 절차를 신청할 때 보면 별의별 문방구 어음이 다 채권자로 신고된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뚜렷한 대책이 나오지 않는 것은 문방구 어음 자체를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 회계사는 "경영인과 채권자가 채권·채무 계약을 맺었다고 그냥 쓰기만 해도 문방구 어음"이라며 "문방구 어음 자체를 막는다면 소규모 기업이나 개인 사업자는 자금줄이 막힐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증권업계 전문가는 "코스닥 기업 최대 주주가 자본금 1억원 안팎 소기업이거나 사기 등으로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다면 회계 법인이 더더욱 엄격하게 감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