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

나 사장은 지난주 친구 박 회장과 술자리를 가진 뒤 고민에 빠졌다. "이제 우리도 슬슬 자식들에게 회사 물려주고 은퇴를 준비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나 사장도 최근 부쩍 그런 생각을 많이 하긴 하지만, 막상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도대체 자식들에게 어디서부터 무얼 가르치고 물려줘야 할지 막막하다. '내가 피땀으로 일궈놓은 회사를 아들 손자가 한 방에 날려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내가 창업한 기업을 제대로 물려주는 방법이 없을까?

◇해법: 창업자의 '가치관' 승계시켜라!

가족 기업을 이끄는 리더들은 반드시 승계에 대한 고민에 빠지기 마련이다. 회사를 물려받은 후계자가 자칫 잘못해 이를 홀딱 '말아먹지'는 않을까 걱정도 된다. 문제는 실제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 글로벌 컨설팅 그룹 매킨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2세대까지 생존하는 가족 기업은 전체의 30% 정도며, 3세대에는 고작 14%만이 살아남는다.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그렇다면 여러 세대에 걸쳐 성공적으로 기업을 운영한 가족 기업은 무엇이 다를까? 200년 이상 된 세계 각국의 가족 기업 경영자 친목 모임인 '레 제노키앙(Les Henokiens)'은 '후손이 창업자의 가치관을 꾸준히 지키도록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장수 비결로 꼽았다. 즉, 교육이나 특별한 훈련을 하는 것보다 가치관 승계를 제대로 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퍼락, 살충제 레이드 등으로 유명한 미국 SC 존슨이 대표적이다. 이 기업은 현재 100년 넘게 5대에 걸쳐 가족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 기업의 핵심 가치는 '회사 직원을 가족처럼 소중히 여긴다'이다. 창업자인 새뮤얼 존슨은 '직원들이 회사에 애정을 가지고 있을 때, 회사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경영 전반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그가 경영에서 물러난 뒤, 다음 세대 경영자들은 이를 그대로 승계, 철저히 지켰다. 실제 1985년 미국 기업 최초로 직원들을 위한 어린이집을 개설했고, 최근에는 직원들이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금요일 오후 회의 금지'라는 규정을 만들기도 했다. 창업자의 믿음대로 이러한 노력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큰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독일 '머크' 현장 견학, 세대 간 대화 통해 후계 교육

그렇다면 이토록 중요한 가치관은 어떤 방법으로 다음 세대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독일의 화학 및 제약 기업인 머크(Merck)를 참조해 보자. 1668년 설립 이래로 300년이 넘도록 한 가문이 이끌고 있는 대표적 가족 기업인 머크는 현재 기업 경영에 직간접으로 참여하는 가족만 해도 10~13대에 걸쳐 200명이 넘는다. 이들은 기업의 핵심 가치 아래 하나로 모일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한다. 가족만의 인트라넷을 운영하거나 머크가(家)만의 가족 잡지를 발행해 모두가 같은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교육 프로그램이다. 1년에 두 번씩 15~20세, 21~30세 그룹으로 나눠 정기적 교육을 진행한다. 사무실, 공장 등으로 현장 견학을 하며 기업 실무를 직접 경험하고 훈련받는다. 가장 중요한 '세대 간 대화' 세션을 통해 온 가족이 모여 기업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갖는다. 이런 체계화된 교육 시스템을 통해 머크가의 후손은 자연스럽게 '가문보다 기업이 최우선'이라는 창업자의 가치관을 익히게 된다.

◇중국 '이금기'는 가족 헌장, 일본 '깃코만'은 '가족 교서'로 창업자 가치관 공유

가족 헌장을 만드는 것도 가치관을 공유하는 데 효과적이다. 굴 소스로 유명한 중국의 가족 기업 이금기(李錦記)는 3대 회장인 리만탓(李文達)과 그의 동생 사이에서 회사 지분을 두고 싸움이 벌어진 것을 계기로 가족 헌장을 만들었다. 형제간의 싸움은 리만탓이 지분을 100% 갖는 것으로 일단락이 났지만, 이후 그는 이런 소모적 분쟁을 예방할 수 있는 강력한 체계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에 창업자의 핵심 가치인 '실용성, 명성, 탐구 정신'을 유지하고 실천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를 만드는데, 이 중 하나가 바로 가족 헌장이다. 여기에는 '가족이 경영에 참여하기 위한 조건'이 언급돼 있는데 '대학 교육을 마쳐야 한다'는 기본적 내용부터 '누구든 한 아내와 한 가정만 가져야 한다' '이혼하는 경우 가족 이사회에서 제외된다'처럼 매우 세세한 부분까지 정해져 있다. 이를 바탕으로 리만탓은 이금기를 전 세계 80개국에 200여 제품을 판매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약 380년 동안 창업자 가문이 운영하고 있는 일본의 식품 회사 '깃코만'도 비슷한 사례다. 현재 세계에서 아주 유명한 간장 브랜드 중 하나로도 알려져 있는 이 회사는 1900년대 초 기업 역사가 300년으로 접어들면서 위기를 맞았다. 기업 내 여러 계파의 가족이 서로 권력 분쟁을 일으켜 갈등이 심각해진 것이다. 이에 깃코만은 1917년, 위기 상황을 해결하고자 모든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가족 교서(敎書)'를 채택한다. '가족의 화합과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기업의 번영과 가족의 재산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한다' 등 총 17개 조항으로 이뤄져 있는 이 교서는 창업자의 정신을 바탕으로 작성됐으며 현재까지도 모든 기업 활동의 중심이 되고 있다.

피땀 흘려 세운 기업이 대대손손 번영하기 위해 후손에게 남겨줄 것은 돈과 권력이 아니다. 올바른 가치관을 제대로 승계시키는 일, 그것이 무엇보다 우선임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