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후반까지 국내 패션산업을 이끌던 중견 의류업체들이 작년 하반기부터 잇따라 도산하고 있다. 경기침체로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아웃도어와 SPA(제조·유통 일괄 의류회사) 업체에 고객을 뺏긴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지난달 18일 여성 캐주얼 전문업체 동의인터내셔날이 부도가 났다. 1990년대 중후반 국내 중저가 캐주얼 시장에서 선두주자 역할을 했던 중견기업이다. 올해 2월과 4월엔 중견 레포츠업체인 가나레포츠와 남성정장업체 굿컴퍼니가 각각 부도가 나면서 패션업계에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
◇소비층 양극화가 패션시장 재편
37조원대(작년 기준)인 국내 의류시장은 최근 3년간 저성장을 기록하며 시장 포화 상태에 접어들었다(한국패션산업연구원). 그 안에서 유일하게 성장하는 분야가 바로 SPA와 아웃도어다.
한국패션협회는 2015년까지 국내 SPA 시장이 4조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웃도어 시장의 성장 속도 역시 가파르다. 아웃도어 업계는 작년 국내 아웃도어 시장 규모는 5조원이었지만, 올해는 전년 대비 11% 성장한 6조4000억원 정도로 추산한다. 의류시장은 포화 상태인데, SPA와 아웃도어만 크고 있으니 다른 분야는 그만큼 위축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주태진 디자인본부장은 "최근 소비 트렌드는 온라인 쇼핑을 즐기는 20~30대와 자기 자신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는 50~60대 이상 소비자로 양극화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 중 젊은 층은 SPA브랜드를, 중장년층은 아웃도어를 선호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기존 여성복·캐주얼 의류 고객은 점점 사라지고 SPA와 아웃도어에 흡수되는 추세라는 것이다.
생활 문화의 변화도 기존 패션시장을 위축시키는 데 한몫했다. 코오롱패션산업연구원 이주하 박사는 "주 5일제가 정착되고 스포츠와 여가를 즐기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소비자는 아웃도어 활동에도 좋은 평상복을 선호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 여성복 업체는 뚜렷한 차별화를 하지 못해 시장이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위협, 해외자본
해외 자본도 밀려오고 있다. 특히 중국 돈의 위력이 커지고 있다. 중국이 국내 패션업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중국 내수시장이 급성장한 2000년대 초중반. 소비자의 구매력은 커졌지만, 중국 업체의 생산 제품으로는 자국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추기 어려웠다. 이에 따라 디자인이 앞선 우리 업체를 사들이고 있다. 한류(韓流)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작년 11월엔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캐주얼 브랜드 '인터크루'가 중국 안나실업유한공사(安娜實業有限公司)에 매각됐다. 같은 시기 이효리가 모델로 활동했던 'GGPX' 등을 운영하던 연승어패럴도 중국 산동루이그룹(山東如意集團)에 경영권을 매각했다.
최근엔 중국 브랜드가 국내 유통업체에까지 진출해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2011년 롯데백화점에 입점한 '마리스프롤로그'도 그중 하나다. 롯데백화점 조환섭 팀장은 "중국 의류 브랜드가 매년 30%씩 고속 성장하고 있어 앞으로 다양한 브랜드를 입점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