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 정자동 분당신도시에서 전용 67㎡짜리 아파트 전세를 살고 있는 직장인 이모(40)씨는 지난 4년간 두 차례 걸쳐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총 7000만원 올려줬다. 반면 이 기간 이 집 시세는 2011년 5억1000만원 선에서 현재 4억8000만원 선까지 떨어졌다. 그 사이 이씨는 3000만원 전세금 대출을 받았고, 2년 넘게 부은 적금을 해약했다. "다른 데로 옮겨봐야 비싸기는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해요. 이사비도 드니까 그냥 참고 사는데 집 살 여력은 없으니 한숨만 나오네요."

여름철 비수기가 시작됐지만 수도권에 벌써 '전세 대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7월 들어 수도권 전세금 상승세가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경우 상승폭이 더 커졌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3월 중순부터 6월 초까지 매주 평균 0.03~0.05% 안팎 상승세를 보이던 서울 전세금은 7월 첫째 주 0.07% 오르더니 지난주는 평균 0.1%나 상승했다. 주간 상승률로는 2011년 9월 첫째 주 이후 1년 10개월 만에 가장 상승폭이 크다. 작년 4월 입주한 성동구 금호동2가 래미안하이리버(85㎡)는 전세금이 작년 말 3억4500만원에서 4억3500만원으로 올 들어서만 9000만원 오르기도 했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B아파트 인근 P공인중개사무소 박모(58) 대표는 "올 초보다 전세가 1000만원 이상 올랐는데 지금도 하루에 7~8통씩 전세 찾는 전화가 오고 대기자도 10명이 넘는다"며 "여름에 전세 찾는 사람이 이렇게 몰리는 건 최근 몇 년 새 처음"이라고 말했다.

전세금 상승세의 가장 큰 원인은 '수요·공급의 불균형'이 꼽힌다. 집주인들이 재계약 시점이 돌아올 때 전세를 월세나 보증부월세(반전세)로 바꾸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저금리 기조로 집주인들 사이에서 월세 선호 현상이 뚜렷해지면서다. 반면 매달 월세를 내는 게 부담스러운 수요자들은 전세 물건만 찾고 있어 전세가 귀해졌다.

실제 올 1~5월 수도권에서는 작년보다 전세 거래는 줄고, 월세(보증부월세 포함) 거래는 늘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수도권 전세 거래는 작년 1~5월 26만8953건에서 올해 1~5월 26만3709건으로 줄었다. 반면 월세 거래는 같은 기간 11만9336건에서 14만8732건으로 20%가량 증가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아파트 인근 B공인중개사무소 이모(48) 대표는 "전세계약을 보증부월세로 돌리려는 집주인이 10명 중 3~4명이 넘는데, 전세 물건이 없으니 손님들이 전세금이 1000만~2000만원씩 오르는 걸 감수한다"고 말했다. 또 재계약이 늘어난 것도 공급 부족에 영향을 주고 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2010년 3%, 2011년 12%, 작년 3.5%씩 해마다 전세금이 올라 싼 전세를 찾기 어렵다는 걸 아는 세입자들이 이사비라도 아끼자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새로 전세를 구하는 사람들은 애를 먹고 있다.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세 물건 부족 현상은 지방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방은 전세금이 지난주 평균 0.08% 올라 47주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수도권(46주 연속 상승) 못지않은 셈이다.

또 수년째 공급이 부족했던 대구·경북이 지난주 각각 0.42%와 0.31% 오르면서 오름세를 주도하는 모습이다. 다만 하반기부터 혁신도시 등에서 입주가 본격화하면 상대적으로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국적으로 전세금 상승세가 장기화하고 있지만 전세 수요자들은 아직 내 집 마련에 나서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지난달 취득세 감면이 끝나고 비수기가 시작되면서 거래량과 집값 모두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오히려 더 위축됐다는 반응도 나온다. 4·1 대책에 대해서도 6월 국회에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및 분양가 상한제 폐지, 수직 증축 리모델링 허용 법안 통과 등이 모두 무산되면서 실망감이 커졌다. 서승환 국토부 장관이 지난달 취득세율 영구 인하 방침을 밝힌 후 오히려 안행부나 지자체와 갈등만 빚은 것도 시장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 김지은 책임연구원은 "취득세 감면 종료와 함께 거래량이 줄어드는 것이 집값 하락의 신호가 돼 전세 선호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