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지하철 2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 3번 출구 앞. 서울 사소문(四小門) 중 하나인 광희문을 마주 보는 이곳엔 주변의 네모 반듯하고 간판이 다닥다닥 붙은 건물과는 딴판인 백색 건물이 있다. 마시멜로우(marshmallow)를 연상시키는 풍요로운 곡선이 눈에 띈다. 이 건물은 세련되고 깔끔한 외관을 유지하고 있지만, 설계연도 1965년, 약 48년이나 된 건물이다. 약 반세기 전, '서 산부인과의원'이란 이름으로 일대 랜드마크 역할을 했다.

김중업의 서 산부인과 병원 건물. 현재 새한빌딩으로 이름을 바꿨다.

지금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법한 이 건물의 설계자는 한국 건축계의 1대 서구 유학파이자 현대건축을 시작점으로 꼽히는 고(故) 김중업(1922~1988)이다. 김중업은 국내 최초로 세계적인 건축명장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에게 사사(師事) 받고, 한국에서 작업한 건축가다. 그는 "일본이라는 필터를 통해 이식된 여태까지의 근대건축이 서구로부터 직접 수입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50~1980년대 고 김수근 건축가와 함께 한국 현대건축을 이끌었던 김중업의 작업 중 상당수는 이미 소실되거나 원(原) 설계 의도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됐다. 그러나 최근 한국 근·현대 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서울 시내 곳곳의 김중업의 고유한 설계 철학을 느낄 수 있는 '숨은 작품'을 찾는 발걸음은 늘고 있다.

서강대학교 본관 전경.

◆ 1956년 귀국, 초기작 서강대학교 본관

3년 반 동안 르코르뷔지에 건축 사무소에서 일한 김중업은 1956년 2월 귀국했다. 그는 귀국 후 한 달 만에 사무소를 차리고 본격적인 국내 활동을 시작했다. 원자력 연구소·경주 국립공원·한국은행 신관·명보극장·부산대학교 본관·건국대학교 도서관·서강대학교 본관 등이 초기작으로 꼽힌다.

서강대학교 본관은 김중업의 초기작 중 작품성 측면에서 손꼽히는 건축물이다. 노고산(老姑山) 능선에 평행하게 세워진 이 건물은 이전까지의 작품과 달리 엄격한 비례, 면 분할, 지형과 조화되는 형태구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본관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우측으로 보이는 격자 형태의 외부 차양막이 눈길을 끈다. 서향인 탓에 오후가 되면 건물 내부로 깊숙이 파고드는 햇빛을 막기 위해 설치됐다. 정교하게 계산된 차양막의 각도 때문에 내부에선 시시각각 빛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다소 평범해 보일 수 있는 본관 업무동 건물은 지붕이 핵심이다. 하늘로 치켜선 형태의 얕은 지붕을 각 기둥에 걸치듯 띄워 건물을 바라볼 때 시선이 흩어지지 않도록 했다.

초기작인 만큼 르코르뷔지에의 흔적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정인하 한양대 교수는 "본관 입구에 설치된 캐노피(canopy)는 르코르뷔지에의 '유니떼 다비따시옹(Unit? d'Habitation)'의 서쪽 입구와 닮았고, 격자 형태의 외부 차양막은 하버드 대학의 '카펜터 센터(Carpenter Center)'를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르코르뷔지에 건축을 모방하고 변용하는 시기를 거쳤다"고 말했다.

주한 프랑스대사관 준공 당시 전경.

◆ 김중업의 대표작 '주한 프랑스대사관'

김중업의 작업 중 현재까지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것은 단연 '주한 프랑스대사관'이다. 1956년 귀국 후, 국내에서의 작업이 어느 정도 손에 붙은 이후 나온 중기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김중업 자신도 이 작업을 들어 "나의 작품세계에 하나의 길잡이가 되었고, 이것으로부터 비로소 건축가 김중업의 첫발을 굳건히 내딛게 되었다"고 자평했다. 이 건물은 서울 서대문구 합동, 신촌 방향 서소문 고가 우측으로 보인다. 대사관인데다 주상복합 아파트에 둘러싸여 서울 중심지에 있지만, 유명 건축물인 데 비해 일반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건물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지붕이다. 한국적 정서의 유려한 곡선미와 가벼움이 느껴지는 지붕은 마치 하늘을 담은 듯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사관에 들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드러나는 건물 배치의 시(視)지각적 체계도 돋보인다.

정인하 한양대 교수는 "평면적으로 보면 각 건물이 서로 삐뚤어져 있고, 또 분리돼 있지만, 특정한 시점에서 보면 전체적으로 통일된 구성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호 주택(구 이탈리아 대사관) 전경.

다만 주한 프랑스대사관은 1959년 설계 당시와는 현재 매우 다른 모습이다. 김희정 건축 큐레이터는 "설계 초기에는 대사관 근무 인원이 소수에 불과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원과 업무가 늘면서 수차례 증축됐다"며 "현재로선 설계 당시의 선과 건물과 전체 대지와의 맥락을 읽기 어렵다"고 말했다.

구(舊) 한국미술관으로 더 잘 알려진 '이탈리아 대사관(이경호 주택)'도 김중업의 개성을 느낄 수 있는 중기 현존작이다. 안국역 사거리에서 북촌로를 따라 감사원 인근까지 가면 만날 수 있는 이 건물은 김중업 특유의 웅장한 지붕 덕분에 찾기 쉬운 편이다. 거대한 콘크리트 판이 격자형태의 또 다른 콘크리트 판 위에 얹혀진 지붕은 단단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다. 외관뿐 아니라 직접 계단을 밟고, 입구까지 오르면 이 건물의 정취를 더욱 잘 느낄 수 있다. 13개의 콘크리트 판넬로 구성된 계단을 오르면 1층 현관은 넓은 테라스의 안쪽 깊숙한 곳에 박혀 있어 고급스러운 느낌이 든다. 여기서 돌아서면 담 아래로 서울 북촌의 풍광이 펼쳐진다. 정인하 교수는 "1960년대 설계한 김중업의 주택 중 구축성이 가장 엄격하고 명확하게 표현돼 있다"고 평했다.

다만 이 주택의 소유주인 김주현씨는 2011년 민간 경매에 집을 내놓으면서 "개인 주택으로 사용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크고, 불편한 감이 있다"며 "건축 대가의 작품을 철거하지 않고 살리면서도 현 사회에서 좋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용도로 쓰였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욱일빌딩 전경.

◆ 1978년 귀국 후의 후기 대표작, '쇼핑센터 태양의 집'·'욱일빌딩'

김중업은 1971년 '광주 대단지 사건'를 계기로 군사정권과의 불편한 관계 속에 1971년부터 1978년까지 프랑스 유랑 생활을 했다. 귀국 후부터 1988년 작고 시점까지가 김중업의 후기작으로 볼 수 있다. 1979년 '쇼핑센터 태양의 집', 1982년 설계한 '욱일빌딩(박시우 치과의원)'은 현대적인 조형미를 느낄 수 있는 후기 대표작이다.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과 구세군 회관 샛길로 보이는 욱일빌딩은 초현실적인 외관으로 규모는 작지만, 시선을 끄는 건물이다. 현대적인 커튼월(전면 유리 마감) 방식의 외벽에 거대한 등대를 연상시키는 거석(巨石)이 붙어 있는 모습이다. 색감이 짙은 푸른색 유리벽과 거무튀튀한 항아리를 깨서 붙인 건물 뒤편의 몸체는 서로 맞붙어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기법의 외관 설계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것으로 준공 당시 업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현재 욱일빌딩은 미용실과 카페, 한의원, 치과의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김중업의 작품이지만, 간판이나 에어컨 실외기 등으로 본래의 조형미를 완벽히 느끼긴 어려운 실정이다.

쇼핑센터 태양의 집 전경.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지하철 6호선 신풍역에서 대림사거리 쪽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보이는 '쇼핑센터 태양의 집'은 외관과 쓰임이 다소 이질적인 건물이다. 예리하게 첨탑같이 솟은 부분부터 측면으로 길게 쭉 뻗은 형태인 이 건물은 적벽돌을 사용해 고딕 양식의 교회를 연상시키지만, 설계 당시부터 쇼핑센터였다. 특이점은 건물 외부로 노출된 지그재그형 램프와 노출 계단이다. 몸체에 원형 창문과 원·반원형으로 패인 붉은 입면과 지그재그형 백색 램프가 독특한 조형미를 구성한다. 김중업은 이 작품을 두고 "지나치다 휙 하고 돌아보고 싶고, 걸음을 멈추고 기웃거려 보고 싶은 곳"이라고 의도를 밝혔다.

현재 이 건물은 한국의 건축 명장이 지은 건물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조형미가 훼손된 상태다. 건물 1층에서 옥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원형 계단은 수년째 별다른 이유 없이 폐쇄된 상태며, 웨딩홀·사우나·대형마트·세탁소 등이 난립해 있다.

1층에서 가방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건물이 오래됐다는 것만 알뿐 그렇게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인지는 몰랐다"며 "건물이 오래되서 시설이 낡아 사용하기 불편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