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차·SK·LG 등 30대 그룹 CEO(최고경영자), CFO(최고재무책임자)들은 현 경제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가 바닥을 지났다'고 응답한 CEO와 CFO들은 20%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당분간 경기가 더 나빠질 것'이라고 봤다. 상당수는 '현 경제팀이 경제 회복에 부정적인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는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었다.
현 정부 경제팀이 펼치고 있는 경제정책에서 잘못하고 있는 정책(복수 응답 가능)을 묻자 '과도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18)'와 '정년 연장, 근로시간 단축, 정리해고 요건 강화' 등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인 노동 관련 정책(12)을 꼽았다. '공정위·국세청·검경을 통한 기업 비리 적극 조사(8)'에 대해서도 불만을 터뜨렸다. 높이 평가하는 정책은 '무역투자진흥회의 부활을 통한 규제 완화'(19)와 '부동산 활성화'(15)를 꼽았다.
'경제 민주화 법안'에 대한 생각을 묻자 '전반적으로 제조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정치 행위'라는 응답이 30대 그룹 중 19곳(63%)이나 됐다.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라고 답한 곳은 9개 그룹이었다.
◇내수 경기 악화, 고용 전망 부진
글로벌 경기 바닥은 '올 하반기'(8개 그룹)와 '내년 상반기'(8)라는 전망이 가장 많았다. 이어 '올 상반기'(6), '내년 하반기'(5) 순서였다. 내수 경기 상황은 더 나쁘게 보았다. 작년 4분기와 올 상반기가 바닥이었다고 응답한 그룹은 6곳에 불과했다. '올 하반기'가 바닥이라는 응답이 10곳이었고 '내년 상반기'(8), '내년 하반기'(4), '2015년까지 계속 나빠질 것'(2) 등 '내년 이후'라는 응답도 무려 14개 그룹이나 됐다.
'올 하반기 경영 환경에서 가장 우려하는 요소를 들어보라'는 질문에도 '내수 부진'(복수 응답, 18곳)이 첫손에 꼽혔다. 그다음이 '미국·유럽연합 등 선진국 시장 부진'(15)과 '경제 민주화법 통과 등 사회 전반적인 반기업 정서'(12)를 들었다.
기업들은 "투자·고용도 크게 늘릴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은 당연히 투자를 늘리는 것이 상식이지만 올 하반기에 작년보다 투자를 늘릴 계획을 갖고 있는 기업은 7개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작년 수준이거나 작년보다 축소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작년 하반기가 경기가 고꾸라지면서 투자 빙하기(氷河期)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투자를 봉쇄하고 있는 셈이다.
'언제쯤 본격적으로 투자하겠느냐'는 질문에 '올해 안 투자에 나서거나 나설 예정'이라고 답한 그룹은 10곳에 불과했다. 18개 그룹이 '내년 이후(9)' 또는 '당분간 본격 투자를 유보 중(9)'이라고 답했다.
하반기 신규 채용도 대다수(응답 28개 그룹 중 21개 그룹)가 '작년 수준으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작년보다 늘리겠다고 나선 곳은 단 5곳이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전경련은 9일 30대 그룹을 대상으로 2013년 하반기 투자·고용 환경을 조사한 결과 6개 그룹(20%)이 '연초 계획보다 투자를 축소한다'고 했고, 23곳(76.7%)은 '연초 계획 수준 투자', 한 곳(3.3%)은 '연초 계획보다 확대한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은 더 짜게 점수 매겨
의외인 것은 30대 그룹보다 중견·중소기업인이 현 경제팀에 대해 더 박한 평가를 하고 있다는 점. 중소기업중앙회·중견기업연합회 회장·부회장단 10명에게 똑같은 설문 조사를 벌인 결과 '기업 자금 사용처로 가장 비중을 두는 분야' 질문에 '신규 투자'라고 답한 기업인은 10명 중 단 1명이었다. 나머지는 차입금 상환과 위기에 대비한 내부 유보에 집중하고 있다고 답했다. '작년보다 신규 채용을 늘리겠다'는 응답자는 단 1명에 불과했다. 나머진 '작년 수준', '줄이겠다'고 답했다. 중소기업중앙회 한 부회장은 "대기업은 그동안 쌓아온 돈이 많아 버틸 수 있지만 우리는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직격탄을 맞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