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공항에 비상 착륙한 보잉 777-300ER 항공기가 고질적인 엔진 결함으로 이미 올해 수차례 사고를 일으켰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003490)의 이번 비상 착륙이 사전에 예고됐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현재 보잉 777-300ER 항공기를 총 15대 보유하고 있어 국제선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의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 대한항공 러시아 '비상 착륙', 예고된 사고였나

미국 시카고를 출발해 인천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보잉 777-300ER 항공기는 2일 저녁 10시경 러시아 아나디리 공항에 비상 착륙했다. 문제는 엔진 결함. 2개의 엔진 중 왼쪽 엔진의 유압이 급격히 떨어지며 엔진이 작동을 멈췄다. 비상 착륙으로 승객 273명은 다행히도 모두 무사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보잉 777-300ER 항공기는 올해에만도 수차례 엔진 작동이 멈추는 사고를 일으켰다. 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초 중국과 러시아에서 이번 대한항공 사고처럼 엔진이 작동을 멈추는 문제가 발생했었다.

보잉777-300ER 모습

미국 항공안전청은 엔진 결함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하자 해당 기종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조사 결과 작년 12월9일~올해 3월에 제작된 보잉 777-300ER 항공기의 엔진 부품에 결함을 발견했다. 항공안전청은 해당 부품을 즉시 교체하라고 지시했다. 대한항공 역시 이 기간에 생산된 보잉 777-300ER 항공기 3대의 엔진 부품을 교체했다.

하지만 이번에 또 동일한 사고가 발생하게 됐다. 현재 보잉 777-300ER 기종은 전 세계에서 537대가 운항 중이다. 대한항공은 지난달 해당 기종을 새로 도입했다. 보잉777-300ER 기종은 연비가 좋아 차세대 주력 항공기로 평가되고 있다.

국토부 항행안전팀 관계자는 "현재 문제가 된 항공기 엔진은 미국 제작사로 보내져 정확한 원인을 찾게 될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다른 항공사 등에 대한 후속조치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이 해당 항공기의 문제 부품을 교환했음에도 똑같은 사고가 또 발생하면서 해당 항공기 기종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불안감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항공기 엔진 결함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해당 항공기의 운행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제작 결함이 완전히 발견되지 않은 항공기를 운행해 대한항공의 신뢰도가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문제가 된 항공기(작년 12월9일~올해 3월에 제작된 보잉 777-300ER) 3대의 엔진부품을 교체했음에도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서 "보다 철저하게 원인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대한항공 안전·위기관리 매뉴얼 문제 생겼나

대한항공은 최근 항공기 기체 결함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4월14일에는 인천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향하던 대한항공 보잉 777 여객기가 일본 나리타 공항에 비상 착륙했다. 당시 항공기 내에서 알수 없는 물질이 타는 냄새가 나는 기체 결함이 발생했었다. 이후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엔진 결함이 발생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비상착륙은 1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하는 사고인데 올해처럼 두 차례 연이어 발생한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이 향후 도입할 예정인 꿈의 항공기(드림라이너) 보잉 787 역시 올해 초 보조 동력 리튬 베터리에 문제가 생겨 한 동안 운항이 중단됐었다. 재운항을 시작한 6월에도 역시 보잉787기는 오른쪽 엔진이 가동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는 등 소비자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대한항공이 잇따라 기체결함 사고를 일으키면서 위기관리·안전 매뉴얼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항공은 1990년대 잇따른 대형 사고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1997년 8월6일 발생한 괌 추락 사고가 대표적이다.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부는 악천후 상황 속에서도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하다 사고가 발생했다. 승객 254명 중 225명이 사망했다.

'아웃라이어'를 쓴 세계적인 경영구루 말콤 글래드웰은 대한항공의 괌 사고 분석을 통해 "조종실의 권위 문화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며 "위기의 순간에도 예의를 갖추기 위해 돌려 말하는 부기장의 한국적 완곡어법이 기장의 판단 실수를 바로잡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대한항공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1990년대 후반 미국 델타항공으로부터 안전 컨설팅과 종합 진단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위기관리 매뉴얼을 새롭게 만들고 조종실 내 위계 질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영어만을 사용하는 등 변화를 추구했다. 이후 지난 10여년간 대형 사고 없이 잘 지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대한항공의 위기관리 방식이 다소 느슨해졌다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이전에도 같은 일이 몇 차례 발생했던 만큼 사전에 문제를 해결했어야 하지만, 이를 감추기에만 급급했다는 얘기다.

대한항공 멤버십 모닝캄 고객 한모씨는 "대한항공은 승무원들의 '미소'를 앞세워 서비스할 생각만 하지, 정작 사건 사고가 터지고 나면 소비자에겐 소홀하게 대하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면서 "한국 사람이라면 의례 대한항공을 이용할 것으로 여기고 고객을 '을(乙)'로 보는 갑(甲)의 근성이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