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腎臟)이 제 기능을 못해 투석을 받아야 하는 환자는 국내에 6만 명이나 된다. 하지만 신장 기증은 턱없이 부족해 환자의 15% 정도만 이식을 받고 있다. 앞으로는 이식할 신장을 구하지 못해 애태우는 일이 사라질지 모른다. 환자의 세포로 돼지에서 사람의 신장을 만드는 연구가 시작됐기 때문. 한쪽에서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라며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돼지 수정란과 사람 줄기세포 융합

일본 정부는 최근 돼지의 몸에서 사람의 신장을 만드는 연구를 사실상 승인했다. 후생성 발표만 남은 단계다. 연구의 핵심은 일본이 2006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유도만능줄기(iPS)세포'다. 사람의 피부세포에 특정 유전자를 집어넣어 배아줄기세포처럼 인체의 모든 세포로 자라는 능력을 갖추게 만든 것이다.

도쿄대(東京大) 나카우치 히로미쓰(中內啓光) 교수는 먼저 유전자를 조작해 원래부터 신장이 없는 돼지를 만들었다. 앞으로 이 돼지에서 얻은 수정란에 사람의 iPS세포를 집어넣을 계획이다. 돼지 배아줄기세포와 사람의 iPS세포는 수정란에서 섞인다. 나중에 태어난 돼지는 모든 장기에 돼지와 사람의 유전자를 동시에 가진다. 반면 신장은 오로지 사람의 것이다. 원래 돼지 수정란에 신장을 만들 유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2011년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이 공개한 복제 미니돼지들. 면역 거부반응 없이 돼지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기 위해 급성 면역 거부반응 유전자를 없앤 돼지다. 최근 일본 도쿄대는 미니돼지 몸에서 아예 사람 장기를 얻는 연구를 시작했다. /농촌진흥청 제공<br>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연구진은 이미 선행 동물실험에서 가능성을 입증했다. 2010년에는 쥐(rat)의 iPS세포를 생쥐(mouse)의 수정란에 집어넣어 생쥐의 몸에서 쥐의 췌장을 만들었다. 올 2월에는 췌장이 없는 돼지의 수정란에 정상 돼지의 iPS세포를 넣어 정상적인 췌장을 가진 돼지를 탄생시켰다.

사람 뇌, 생식세포 가진 동물 생산은 금지

사람과 동물의 유전자가 섞인 수정란을 만드는 이른바 '이종배아(異種胚芽)' 연구는 미국과 영국에서도 연구 목적에 한해 허용되고 있다. 다만 사람의 생식세포를 가진 동물을 만들어 그들끼리 교배하는 일과 사람 뇌를 가진 영장류의 생산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생명윤리학자들은 일본 연구진이 법이 정한 선을 넘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먼저 사람 iPS세포가 신장 외 다른 돼지 장기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신장은 사람의 것이라도 혈관은 어디까지나 돼지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 이식 시 면역거부반응 가능성도 있다. 일본 연구진이 돼지에서 실패하면 다음엔 같은 영장류인 원숭이로 실험하겠다고 해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사람 장기를 얻으려고 돼지를 희생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논란도 있다.

도쿄대 연구진은 이미 문제 해결책을 찾았다고 주장했다. 아직 논문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특정 장기는 물론이고 그 혈관도 사람 iPS세포의 유전자를 갖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러면 면역거부반응을 막을 수 있다. iPS세포를 만들 때 유전자 조작을 통해 원하는 장기 외에 다른 장기는 동물의 몸에서 자라지 못하도록 하는 실험도 성공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초기 연구 시작돼

돼지는 예전부터 이식용 장기의 공급원으로 주목받았다. 다 자라도 몸 크기가 일반 돼지의 3분의 1에 불과한 미니돼지가 주인공. 미니돼지의 장기는 사람의 장기와 거의 같은 크기다. 문제는 면역거부반응이다. 과학자들은 돼지에서 관련 유전자들을 없애는 연구를 하고 있다.

2002년 미 미주리대의 프래터(Prather) 교수는 세계 최초로 초기의 급성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없앤 미니돼지를 탄생시켰다. 2005년 하버드대 연구진은 이렇게 초급성 유전자를 없앤 복제 미니돼지의 심장을 원숭이에 이식해 179일 동안 생존 기록을 세웠다.

국내에서는 2009년 건국대 김진회 교수팀이 세계 6번째로 초급성 면역거부 유전자를 없앤 미니돼지 복제에 성공했다. 지난달 김 교수팀은 프래터 교수와 함께 초급성 다음 단계의 면역거부 유전자까지 제거한 복제돼지 생산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의 권득남 교수는 "세계 어디든 연구의 최종 목표는 돼지에서 인간화된 장기를 얻는 것"이라며 "우리도 사전 단계로 신장이 없는 돼지를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생명윤리법은 아직 사람과 동물의 배아 융합을 금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 김선웅 사무관은 "iPS세포를 배아로 볼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며 "윤리 논란이 큰 만큼 신중하게 연구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