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에는 20개 가구 브랜드가 입점해 경쟁을 벌인다. 그중에서도 특정 품목이 아니라 침대·소파·책장 등 다양한 제품을 모두 갖추고 판매하는 종합가구업체는 5개 정도에 불과하며 대부분 외국 가구 브랜드다. 그런데 지난해에 이어 올 상반기에도 쟁쟁한 외국 브랜드를 물리치고 매출 1위를 차지한 업체는 뜻밖에도 디자인벤처스라는 국내 중소 가구업체다. 이 업체는 롯데신세계, 갤러리아 등 전국 50여개 백화점에도 입점해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가구업계의 숨은 실력자다. 지난해 매출은 327억원.

고가(高價)의 제품들이 경쟁하는 백화점에서 세련된 디자인을 바탕으로 유명 수입 브랜드를 넘어서는 국내 중소기업들이 있다. 이들은 창업자의 개성 있는 경영 철학과 뚝심 있는 판매 전략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특히 차별화된 디자인을 핵심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비싼 재료 사용하고 디자인 차별화

가구 '디자인벤처스' 안교강… 고급 자재·자체 디자인 불황에도 두 자릿수 성장

디자인벤처스는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안교강 대표가 1990년 세운 가구 전문 업체. 회사 설립 당시 국내 가구업계는 장식 없이 깔끔한 '젠(zen·禪) 스타일'이 유행했다. 재료는 대량생산이 가능한 저렴한 목재를 주로 사용했다. 안 대표는 이런 흐름과 정반대로 갔다. 그는 "장인의 마음으로 명품 가구를 만들겠다"는 생각에 디자인연구소를 세워 작은 손잡이 하나까지 전부 설계해 제작했다. 목재는 단풍나무나 아메리칸 화이트 오크처럼 고급 수종을 고집했다. 이 회사 박승연 팀장은 "안 대표 집무실에 가면 전 세계 나무 견본과 서랍장, 손잡이 모형 등이 가득하다"며 "손잡이 하나만 해도 가로 세로 비율을 바꿔가며 최적의 디자인을 찾기 위해 시간을 쏟는다"고 말했다.

안 대표의 이런 '디자인 고집'은 소비자들에게 입소문으로 퍼지면서 경기가 어려울 때 위력을 발휘했다. '혼수 가구'로 인기를 끌면서 2008년 금융위기와 지난해 불황에도 두 자릿수 성장을 유지했다. 현대백화점 이상돈 바이어는 "수입 브랜드에 비해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선보여 각 연령대를 공략하는 게 인기 비결"이라며 "고급스러운 디자인에 비해 저렴한 가격대도 중요한 이유"라고 밝혔다.

◇"제품을 예술에 가깝게"

그릇업체 '이도'의 이윤신… 전통 그릇에 스파게티 1년만에 매출 73% 성장

중소 그릇업체인 이도도 수입 브랜드들이 장악하고 있는 백화점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도는 도예가 이윤신 대표가 1990년 설립한 회사. 서울 가산동에 있는 아웃렛 'W몰' 회장이기도 한 이 대표는 홍익대 미대를 나와 도자(陶磁) 미술을 전공한 뒤 일본 도쿄 등에서 개인전만 20회 넘게 가진 정상급 도예가다. 하지만 이 대표는 '예술은 실용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작품이 아닌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고려청자, 이조백자 등 훌륭한 도자기 문화와 기술을 바탕으로 도자기를 실생활에서도 많이 사용했는데, 일제 시대 이후 감상에만 그치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이윤신 대표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등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제품을 공방에서 직접 손으로 만들며 현대 식생활에 맞게 라면과 스파게티, 스테이크 등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었다. 신세계백화점이 먼저 알아보고 2008년에는 입점을 제의했다. 현재는 서울 강남점과 본점 등 4개 매장에 입점해 있다. 매출도 급증세다. 2011년 7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지난해 13억원으로 73%나 성장했다. 아직 브랜드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10여개의 유명 수입 브랜드가 각축하는 신세계백화점에서 매출 5위로 뛰어올렸다. 지난 1월에는 강남점 매장을 2배로 확장했다. 신세계백화점 소현진 바이어는 "이도 할인 행사가 있을 때면 매번 주부들이 줄을 선다"고 말했다. 이도 고범수 부장은 "내년에는 미국 뉴욕 등 해외에도 진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 세계 점유율 1위 차지하며 60여 개국에 판매

주방용품 '네오플램' 장재봉… 색깔있는 도마 선보여 항균기능, 세계 점유율 1위

주방용품업체 네오플램은 지난해 112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항균 도마에서 세계 1위 점유율을 차지했다. 네오플램은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주방용품을 수입해 팔던 장재봉 사장이 2006년 "한국 특성에 맞는 주방용품을 만들어 판매하자"는 생각에 설립한 회사다. 나무와 플라스틱 제품만 있던 도마에 주목해 항균 물질과 플라스틱 원료를 배합해 도마 속까지 항균이 가능하도록 만든 제품이다. 도마에는 연두·하늘·분홍 등 색을 입혀 차별화했다.

장 사장은 해외 판로 개척에도 힘을 쏟아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세계 60여개 국가에서 판매되고 있다. 월평균 판매량은 50만개 정도. 미국 최대 대형마트인 월마트에서 판매되는 도마의 40%도 네오플램이 OEM(주문자상표부착)으로 납품한 것이다. 롯데백화점 양동진 바이어는 "특히 색감이나 디자인이 감각적이어서 젊은이들에게 반응이 좋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