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중국 산시(陝西)성 성도(省都)인 시안(西安)시 남서쪽에 있는 가오신(高新·'하이테크'라는 의미)개발구. 단지를 남북으로 잇는 도로변의 가로등마다 '삼성과 손잡고 함께 윈윈하자(携手三星 合作共�)'라고 적힌 깃발이 꽂혀 있었다.

단지 중심부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10㎞ 정도 달려가자 축구장 127개를 합친 면적보다 넓은 140만㎡ 면적의 광활한 부지가 나타났다. 레미콘 트럭들이 흙먼지를 날리며 공사 현장을 분주히 오갔고, 35개 타워크레인은 쉴 새 없이 자재를 운반했다. 이곳에서는 삼성전자의 10나노급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공장 건설이 한창이다. 낸드플래시 반도체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에 들어가는 필수 제품으로 최근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중국 시안시 하이테크개발구 일대 가로등에‘삼성과 손잡고 함께 윈윈하자’라고 적힌 깃발이 꽂혀 있다(사진 왼쪽). 한창 1단계 생산라인 공사가 진행 중인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공장의 모습.

삼성전자는 현재 1단계 생산라인(38만㎡) 공사를 진행 중이며 공장 건설에 70억달러(약 8조원)를 투입한다. 삼성의 중국 투자액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이자, 중국 내 외국 기업의 단일 투자 프로젝트로도 가장 큰 규모이다. 한·중 경제협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젝트인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런 점 때문에 시안을 방문지로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향후 반도체 시황을 봐가며 2~3단계 생산라인 건설 계획을 결정할 예정이다. 현재 공사 중인 1단계 공장은 올해 말 완공해 내년 초부터 생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 공장에서는 한 달에 10만장의 10나노급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한다.

공사 현장에는 '삼성 프로젝트에 속도를 내 산시성 투자 환경의 모범 사례를 만들자(加快三星項目建設速度 打造陝西投資環境典範)'라는 표어가 붙어 있었다. 이날은 섭씨 37도가 넘는 불볕더위였지만 작업 현장은 활기가 넘쳤다. 작년 9월 공사를 시작해 현재 공정률은 36%. 건물의 외관 공사는 거의 다 끝난 상태다.

시안은 서주(西周)로부터 중국 첫 통일왕조인 진(秦)나라, 당(唐)나라 등 중국 역대 13개 왕조가 도읍으로 삼았던 3000년 고도(古都)이다. 당나라 때는 장안(長安)으로 불리며 동·서 교역의 거점 역할을 했다. 현재는 중국 서부대개발의 거점 도시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중국 내 최대 규모 투자

삼성전자가 중국 내륙인 시안까지 들어가 공장을 짓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 최대의 반도체 수요처로 떠오른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포석이다. 중국은 PC와 스마트폰 등의 세계적인 생산 기지로 거듭나면서 반도체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다. 세계 PC의 60%, 휴대전화의 65%가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중국 수요를 잡지 않고서는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진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제품을 중국 현지에서 생산해 대응 속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중국 정부가 낙후된 서부 지역 개발을 위해 서부에 투자하는 기업을 상대로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면서 IBM·인텔·퀄컴 등 대기업들이 시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도 이 같은 추세에 합류한 것이다.

신재호 삼성전자 시안 현지법인 상무는 “시안은 반도체 공장 설립을 위해 좋은 입지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대규모 공업단지 가동을 위한 전력 공급은 석탄·석유 등 산시성 북부의 광물자원을 바탕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시안에는 시베이공업대학·시안전자과기대학 등 60여개 대학교와 3000여개 연구기관이 있어 반도체 산업의 핵심인 우수 인재 확보에도 유리하다. 시안에서는 IT 분야를 전공한 대졸자와 석·박사 인력이 매년 5000~6000명씩 배출된다.

지방정부의 초스피드 지원

시안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진시황릉 병마용갱 입장권 뒷면에는 ‘삼성전자가 시안 하이테크개발구에 메모리칩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熱烈祝賀三星電子存儲芯片項目落戶西安高新區)’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중국 당국이 삼성전자의 시안 공장 건설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삼성전자 공장 건설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원래 살던 7개 마을 주민 1만여명은 공장 설립 계획 발표 후 불과 두 달 만에 이주를 완료했다.

하이테크개발구에는 6~7명으로 구성된 삼성전자 전담반이 별도로 꾸려져 있다. 개발구 청사의 한 개 층을 삼성전자가 쓰고 있다. 행정 절차를 처리하기 위해 이리저리 옮겨다닐 필요없이 한 건물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셈이다. 도로에서 개발구 청사로 진입하는 입구에는 ‘삼성(SAMSUNG)’이라고 적힌 입간판과 ‘시안 하이테크(XIAN HIGH-TECH)’라고 적힌 입간판이 함께 세워져 있어 청사가 마치 삼성 건물이 아닌가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시안시는 공항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와 삼성전자 공장을 잇는 4.8㎞ 구간의 연결 도로를 건설 중이다.

주변 경제 들썩

삼성전자 공장 인근에는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를 겨냥한 식당들이 생겨났다. 한국에서 온 근로자들을 위한 한식당 간판도 눈에 띄었다.

현재 삼성전자 시안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에는 5600여명의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건물 외관 공사가 끝나고 내부 인테리어 작업과 장비 반입 등이 본격화되면 근로자 수는 1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본격 가동되면 약 2만개의 일자리가 생겨날 것으로 현지에서는 예상하고 있다. 삼성전자에 근무하는 인원이 약 1500명, 160개에 달하는 협력업체에서도 상당한 일자리 창출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