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라면 보유한 주식과 채권 같은 금융 자산을 지금 빨리 정리하겠습니다. 아시아 시장도 전망은 좋지 않아요. 연말까지 전 세계 자산 시장이 폭락할 확률이 높습니다. 진정한 승자(勝者)는 누가 더 많은 현금을 가지고 있는지, 적절한 실물 자산에 투자했는지에 따라 판가름날 겁니다."

세계적 투자가인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흥분된 목소리였다. 그는 1969년 조지 소로스와 퀀텀펀드를 창업, 12년간 3365%라는 경이로운 누적 수익률을 올리며 단 한 해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지 않았던 세계적 투자 고수다. 그러나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RB) 의장의 양적 완화(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여 돈을 푸는 것) 축소 발언은 전설적 투자 고수도 다소 혼란에 빠뜨린 듯했다. 그는 "솔직히 예전처럼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겸손한 자세를 취하며 말문을 열었다.

세계적 투자가인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머니섹션 M플러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연말까지 글로벌 자산 시장이 두 번 정도 폭락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주식이나 채권 같은 금융 자산을 빨리 정리하고 현금과 상품에 투자하라”고 조언했다.

◇"연말까지 자산 시장 두 번 폭락 가능"

로저스 회장은 향후 양적 완화 규모가 축소될 수도 있고 혹은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그러나 그 어떤 시나리오도 글로벌 경제에는 '폭탄'이 될 거라고 경고했다.

"지금 크게 두 가지 시나리오를 가정할 수 있습니다. 먼저 올해 하반기에 미국이 양적 완화를 축소하면서 채권 금리가 폭등하고 국채 가격이 폭락하는 경우죠. 그러면 미국은 '여러분, 죄송합니다. 돈을 더 찍어내야겠어요'라는 반응을 보일 거예요. 도무지 돈 찍는 것을 멈출 수 없다는 징표죠.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미국은 3~4차례 양적 완화 정책을 잠시 그만뒀다가 바로 다시 시작했거든요? 시장이 양적 완화 정책을 다시 강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그다음 시나리오는 양적 완화가 지속되는 것이죠. 미국은 나라가 생긴 이후 항상 4~5년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미국의 실업률은 2008년 금융 위기 때보다 높아서 7.5%에 달합니다. 미국 경제의 회복세는 굉장히 느리고 더딜 겁니다. 만약 미국 경제가 나아지지 않아 양적 완화가 지속되면, 시장은 이를 더 큰 재앙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요."

로저스 회장은 두 가지 시나리오 중에서 첫째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을 더 높게 봤다. 그는 "앞으로 몇 개월간 전 세계 자산 시장이 폭락세를 보일 때마다 미국이 시장을 진정하기 위해 양적 완화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힐 것"이라며 "이때 증시나 채권 시장에서 랠리(상승세)가 나타나다가 결국 연말쯤 다시 폭락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로저스 회장은 "현재 세계적으로 증시가 급락하고 있는데, 이것은 연말 자산 가치 폭락을 예견하는 신호(signal)"라고 말했다. 그는 '양적 완화 규모 축소 자체가 미국 경제가 확실히 나아졌다는 긍정적인 신호'라는 일부 전문가의 생각에 대해서는 "짧은 생각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탄탄한 경제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요? 그건 결국 금융시장에 과도한 유동성 문제를 야기할 것이고, 증시·채권·환율까지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어요."

◇러시아 루블화에 주목하라

인터뷰 도중 로저스 회장은 깜짝 발언을 했다. 한국이 현 상황에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한 나라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이 신흥 개발국도 아니고 선진국도 아니지만, 일본과 중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국가'라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한국 경제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잘 버티고 있어요. 물론 자본시장은 최근 몇 년간 발전하지 못했어요. 정부의 심한 규제 때문이죠. 그러나 한국의 중앙은행은 다른 나라들처럼 돈을 찍어내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경제 위기가 반복되면서 다른 나라들보다 상대적으로 잘 버틸 겁니다. 한국의 원화도 투자 가치가 높은 통화 중 하나예요. 저는 솔직히 한국의 서울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요(웃음·그는 현재 싱가포르에 거주 중이다)."

그에게 '당장 1억원의 여유 자금이 있는 한국 50대 직장인이라면 어디에 투자하겠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현금에 투자할 것입니다. 올 연말, 또는 앞으로 1년 안에 글로벌 금융시장엔 큰 타격이 올 겁니다. 그때를 대비해 가급적 현금 자산을 많이 확보해놔야 해요. 특히 러시아의 루블화에 주목하십시오. 최근 핫머니(단기성 투자금)가 많이 유입되고 있는 러시아는 교환 가능 통화(Convertible currency·언제든지 다른 화폐나 금으로 바꿀 수 있는 화폐)라서 장점이 많습니다. 또 외환 보유 사정도 좋은 편이죠. 글로벌 경제에 문제가 생길 때 폭락세가 가장 덜할 겁니다."

그가 추천하는 둘째 투자처는 상품 시장이다. 그는 "물론 상품 시장도 한동안 고통에 직면할 테지만 금융이나 자본시장보다는 폭락세가 덜할 것"이라며 "설탕, 은, 구리 같은 실물 자산의 가치가 훨씬 인정받을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설탕이 최고가보다 80%가량 저평가돼 있다고 했다. 그는 "설탕은 끊임없이 에너지에 쓰이는 원자재로 수요가 높기 때문에 투자 가치가 항상 높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에 재앙이 덮치는 시기에 투자 기회가 생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경험 있는 투자자라고 해도 다시 이해하고 공부해야 한다. 아무리 상품이 좋고, 현금이 좋다고 해도 절대 모르고 투자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달러 팔고 유로화·중국 증시에 투자

로저스 회장의 최근 자산 포트폴리오는 어떤 모습일까? 지난달 말 일본 증시가 최고점에 달했을 때 주식을 팔아 상당한 차익을 거뒀다고 한다. 그는 "일본 증시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빨리 올랐다"며 "아베노믹스(무제한 금융 완화와 재정 지출 확대가 골자인 일본 아베 총리의 경제정책)는 실패할 확률이 높지만, 개인적 이익을 가져다준 아베 총리에겐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엔 설탕 회사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또 현금 자산 중에 달러를 팔고 최근 유로화를 샀다. 그는 "유로화도 너무 강세라서 스위스 프랑이나 러시아 루블 등으로 현금 자산을 분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원화도 좋은 선택이에요. 그런데 환 투자에 대한 한국 정부 규제가 심해서 투자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는 현재 싱가포르에 살고 있다. 중국의 정치는 싫지만 자녀를 아시아에서 성장시키고 싶어 만다린을 가르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로저스 회장은 과거부터 중국이 세계의 리더가 될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는 "다른 아시아 시장은 전망이 좋지 않지만 최근 중국 주식은 조금 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