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 쇼크'가 세계를 흔들고 있다.

2008년 경제 위기 발생 이후 벤 버냉키 미 연준 의장은 금리를 제로로 끌어내리고, 이것도 모자라 돈을 찍어서 금융회사의 채권을 사주는 극단적인 통화팽창 정책을 구사했다.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서라도 대공황 같은 파국을 막겠다던 버냉키 의장이 이제 뿌린 돈을 거둬들이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버냉키 의장은 19일(현지 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통해 "올 연말 양적 완화 규모를 줄이다가 내년 중반쯤 끝낼 것이고, 기준 금리는 2015년 이후 올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3조달러(약 3463조원)를 시장에 풀어 경기를 지탱해온 양적 완화 정책을 사실상 내년 중반에 끝내겠다는 의미다.

사상 초유의 통화팽창 정책을 구사했던 버냉키 의장이 퇴각 나팔을 불자 세계 금융시장은 처음 가보는 퇴로(退路)를 앞에 두고 요동치고 있다. 증시는 급락했고, 금리와 환율은 치솟았다. 마감 직전 버냉키 발언을 접한 뉴욕 증시에서는 다우지수가 1.35%, 나스닥지수가 1.12%씩 빠졌다. 이어 개장한 아시아 증시와 유럽 증시도 연쇄적으로 하락했다. 20일 한국 코스피지수는 전일 대비 37.82포인트(2.00%) 하락한 1850.49에 거래를 마쳤다. 연중 최저치였다. 일본(-1.74%), 중국 상하이(-2.77%), 홍콩 항셍H(-3.33%), 인도(-2.74%) 등 이날 주요 아시아 증시 중 상승한 곳은 한 곳도 없다. 영국(-2.26%), 독일(-2.46%) 등 유럽 증시도 개장 직후 하락세로 출발했다.

버냉키 "달러 찍어내기 내년 끝내겠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19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올 연말부터 양적 완화(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여 돈을 푸는 정책) 규모를 줄이기 시작해 내년 중반쯤 끝낼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발언은 ‘돈의 힘’으로 세계경제를 떠받치는 시대가 끝나고 있음을 예고한 것이다. 세계경제 석학들은 미국의 양적 완화 중단이 신흥국의 성장 둔화, 국채 가격 폭락 등을 초래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본지가 20일 베리 아이켄그린 UC버클리대 교수,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투자 전문가 8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한 결과 4명은 양적 완화 중단이 신흥국들을 패자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경상수지 적자 보전을 위해 외부 차입에 의존해온 신흥시장 국가들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인도와 브라질·터키 같은 나라를 피해국으로 꼽았다.

☞양적완화(量的緩和 quantitative easing)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화폐를 찍어 국채 등의 자산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중에 자금을 대량 공급하는 통화정책을 말한다. 기준 금리가 제로(0)에 가까운 상황에서 더 이상 금리를 낮추기 어려울 때 쓰는 이례적인 정책이다. 양적 완화를 시행하면 일반적으로는 주식·채권·부동산·원자재 등 실물 자산의 가격이 상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