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이 금융위기 이후 지속했던 '달러 풀기(양적 완화)'의 중단 시점을 내년 중반으로 명확히 하면서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일본의 경기부양책이 실패할 수 있다는 '아베리스크' 시나리오와 함께 하반기 대외 불확실성은 상반기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

우리나라 재정, 통화당국은 이번에 공개된 미국의 출구전략 수위가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2008년 말 이후 지속한 양적 완화로 급격히 불어난 글로벌 유동성의 회수 시기가 분명해진 만큼 '컨틴전시 플랜(비상대응 계획)'을 세워 자본 유출입을 면밀히 모니터링한다는 방침이다. 주요국 중앙은행과의 통화스와프 확충 노력도 강화하기로 했다.

미국의 출구 전략 본격화는 미국의 경제 회복세가 궤도에 올랐다는 긍정적인 신호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등 신흥국 입장에서는 자본 유출입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에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다. 단 우리나라가 다른 국가에 비해 재정건전성이 양호하고 금융위기 이전보다 신용등급이 높아진 것은 자본 유출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꼽힌다.

◆ 美 연준 "연말 양적완화 규모 축소‥내년 중단" ‥시장 요동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19일(현지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마치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 경제 개선세가 지속된다면 연준은 올해 말부터 채권 매입 규모를 축소하다가 내년 중순쯤 자산 매입을 중단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적완화 축소 시기를 올 연말로, 종료 시기를 내년 중순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무제한으로 돈을 풀었던 미국이 이러한 출구 전략에 나선 것은 경기가 회복되고 있으니 이제 예전처럼 돈을 풀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10%에 육박했던 미국의 실업률은 7% 후반으로 떨어졌고, 각종 주택지표도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다. 연준은 양적완화 축소의 기준을 실업률 6.5%로 보는데, 내년에 이러한 수준의 실업률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그러나 금융 시장의 반응은 경기 회복보다 자금 회수 우려 가능성에 쏠렸다. 뉴욕 증시에서 다우존스산업평균은 전날보다 206.04포인트(1.35%) 급락했다. 뒤이어 문을 연 서울 증시도 1% 넘는 하락세로 출발했고,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10원 이상의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도쿄 증시도 하락 중이다.

◆ 정부 "컨티전시 플랜 있다…금융시장 변동성 주시"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에 대응한 상황별 컨틴전시 플랜을 마련해 둔 상태"라며 "미국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충격을 우려해 세심하게 언와인딩(자금 회수)에 나설 것이라고 보지만 우리 나름대로 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버냉키 의장의 발언 수위는 예상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고 출구전략 시점을 분명히 밝혀 불확실성을 줄여준 측면도 있다"며 "하지만 단기적으로 금융시장에서 변동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번주 국회 업무보고에서 "양적완화의 조기 회수에 대비한 시나리오별 대책을 갖고 있다"고 밝혔었다.

한국은행 관계자도 "시장에서 예상하던 시기와 많이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신흥국에는 다소 경각심을 주는 발언이었다"며 "단기 자본이 과도하게 유입되지 않도록 기존의 외환건전성 정책을 잘 운용하고 외채, 외환보유액 관리에 신경쓸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최근 국회 현안보고에서 미국의 출구 전략에 대비해 주요국과 통화스와프를 확대할 계획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다음 주 기재부가 발표하는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도 미국의 출구전략은 일본의 경기부양책인 '아베노믹스'와 함께 중요한 대외 변수로 다뤄질 전망이다. 이미 정부는 이달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에 '주요국 양적완화 리스크'를 대외 위험에 추가했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하반기 워치 포인트는 아베노믹스와 출구전략"이라며 "시장에 해가되는 단선적인 대응 보다는 차분히 봐가면서 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국제공조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 韓 금융위기 이전보다 체력 좋고 재정건전성 양호

주식, 외환 시장이 단기적으로는 출렁이겠지만, 우리 경제가 받는 충격은 다른 신흥국에 비해 크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높다. 미국의 출구전략이 각국에 미치는 영향은 차별적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4~5년간 지속된 글로벌 완화정책이 전환점을 맞는 것이기 때문에 국제 금융 환경 변화에는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신흥국은 그동안 들어왔던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충격을 받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재정건전성이 양호한 편이고 과거에 비해서는 신용등급도 많이 올라가 여러모로 차별화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금융연구실장은 "우리나라가 다른 신흥국에 비해 크게 나쁜게 없다는 점에서는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수년간 지속되온 초저금리 환경이 변한다는 데에서 대응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장 전망은 출구전략으로 금융시장에서 큰 충격이 오지 않는 이상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정부는 올 하반기 성장률이 3%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창선 연구위원은 "현 시점에서 금융 시장의 불안이 실물경제까지 전이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박 실장은 "결국 미국 경제가 좋아져서 벌이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이에 따른 플러스(+)효과와 금리가 올라가서 생기는 마이너스(-) 효과를 모두 감안해야 한다"며 "만약 미국의 경기 회복이 중국에도 전파가 돼 우리도 혜택을 같이 누릴 수 있다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