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의 중점 과제인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로드맵'이 지난 3일 발표됐다. 고용 창출을 위한 여러 정책 과제를 담고 있지만, 핵심은 시간제 일자리의 확대다. 로드맵에서는 향후 성장과 소득 분배 개선의 핵심 요소인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5년간 일자리 238만개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의 40% 정도가 시간제로 충당된다.

독일·네덜란드, 시간제 일자리로 성장과 고용 개선

정부가 이번 대책을 만들면서 벤치마킹한 나라는 네덜란드와 독일이다. 최근 20년 동안 고용률이 우리나라와 비슷했다가 5년 만에 70% 수준으로 급등한 나라는 이 두 나라밖에 없다. 네덜란드는 1990년대, 독일은 2000년대에 고용률 70%를 달성했는데, 새로 늘어난 일자리의 절반가량이 시간제 일자리였다.

독일은 통일 후 높아진 실업률을 해결하기 위하여 2002년 시간제 일자리를 미니잡(mini job)으로 제도화했다. 미니잡은 임금 수준이 월 400유로(약 66만원) 이하로 낮지만, 소득세와 사회보장분담금을 면제해 준다. 독일은 사회보장분담금이 임금의 절반에 달하기 때문에 분담금의 면제는 노사 모두에게 상당한 혜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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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는 1980년대까지 유럽의 문제 국가로 불리다 1990년대 이후 유럽의 강소국으로 탈바꿈했는데, 그 원동력이 시간제 근로였다. 네덜란드의 시간제 근로는 전일제(full time) 근무를 단순히 둘로 쪼개어 일자리를 증가시킨 일자리 나누기와는 성격이 다르다. 오히려 전일제 일자리와는 상관없이 시간제 일자리를 새롭게 만들어 일자리 창출과 함께 성장률을 높인 모범 사례로 평가된다.

선진국의 경험으로 볼 때 시간제 일자리의 창출을 통해 고용률을 높이고 다시 이를 통해 성장과 소득분배의 개선을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 볼 수 있다. 다만 시간제 일자리가 과거의 저급한 일자리가 되지 않고 반듯한 일자리가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시간제 일자리 성공하려면

먼저, 시간제 일자리에 대하여 공정과 비례 원칙을 좀 더 확실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시간제 근로자를 임금과 근로 조건에서 전일제 근로자와 차별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근로시간에 비례하여 보상을 받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월 60시간 미만 근로자는 사회보험 적용이 배제되어 있는데 이를 고쳐야 한다.

또한 시간제 일자리를 고용하는 기업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독일이나 네덜란드처럼 사회보험료를 정부가 일정 부분 보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시행되고 있는 저임금 근로자에 대한 사회보험료 지원사업을 확대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둘째, 전일제 일자리를 쪼개려 하기보다는 시간제 근로에 적합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 주력해야 한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근로시간 단축이나 휴일 근무의 제한에 따라 기존의 일자리가 나누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보다는 시간제 근로 자체의 유연성을 활용한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즉, 시간제 일자리는 하루 4시간 근무처럼 매일 적은 시간 일할 수도 있지만, 주 3일 근무나 재택근무 등 다양한 고용 형태와 연계되어 새로운 일자리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셋째, 시간제 일자리의 창출은 정부가 아니라 민간에 의해 주도되어야 한다. 즉, 민간 기업이 필요해서 시간제 일자리를 활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시간제 2명의 생산성이 전일제 1명보다 높아진다면 굳이 정부가 팔을 비틀지 않아도 기업이 자발적으로 시간제 근로를 활용할 것이다. 이것이 네덜란드의 경우이다.

우리나라는 많은 고급 여성 인력이 일하지 않고 있다. 노동시장에서 오랫동안 벗어난 여성들은 다시 일자리로 복귀한다 하더라도 오랜 공백기 때문에 과거만큼의 생산성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시간제 근로가 활성화돼 공백 기간이 짧아지거나 아예 없어진다면 생산성을 유지한 채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장시간 일하는 1명보다는 짧게 일하는 2명의 생산성이 훨씬 높아진다.

마지막으로, 시간제 일자리의 활성화를 위해선 정부 정책의 전반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주로 기혼 여성이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시간제 근로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여성들이 마음 놓고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양질의 보육서비스 확충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또한 출산이나 가사로 전일제보다 시간제 근로가 필요한 근로자에게는 근로시간 조정 청구권을 주어 전일제와 시간제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한다. 조세제도 역시 한 가구에서 혼자 일하는 것보다 부부 두 명이 일하는 것이 유리하게 개편돼야 한다.

시간제에 대한 편견 버려야

이번 정부 대책에 대해 일부에선 시간제는 결국 비정규직 일자리이기 때문에 오히려 고용의 질을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또 전일제 일자리를 둘로 쪼개어 일자리를 부풀려봐야 고용 시장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다.

이런 비관론은 시간제 근로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시간제 일자리는 전일제와 비교할 때 임금과 근로 조건에서 차별을 받는 열악한 일자리임을 부인할 수 없다.

오죽하면 2002년 노사정위원회에서 노사정이 모두 동의하여 시간제 일자리를 비정규직 일자리로 분류하였겠는가. 지금도 우리나라의 시간제 일자리는 비정규직으로 분류되어 있다.

하지만 선진 외국은 시간제 일자리를 비정규직인 임시직(temporary workers)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시간당 임금이나 사회보험 측면에서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각종 차별을 없애 정규직이나 전일제처럼 대우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처럼 정규직과 다름없는 시간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시간제는 비정규직'이란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는 것이 고용률 70% 달성의 최대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