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 해양대기청(NOAA)은 뉴질랜드 앞바다를 헤엄치는 향유고래 사진을 공개했다. 촬영자는 비행기에 탑승한 카메라맨도, 인공위성도 아니었다. 바로 회전날개 여섯 개의 소형 무인항공기, 드론(drone)이었다. 언뜻 보기에 장난감 같지만 이미 남극에 사는 펭귄과 물개 무리도 촬영한 베테랑이다.

적진을 정찰하고 파괴하는 데 주로 쓰이던 드론이 과학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야생동물을 관찰하고 밀렵을 감시하는 데서부터 허리케인과 화산에 달려가는 위험한 임무도 마다하지 않는다. 재난 현장에서 생존자를 찾고 의료품을 전달하는 드론도 개발 중이다. 무기를 버리고 자연과 사람을 택한 '착한' 드론들이다.

코뿔소 밀렵 감시하고 허리케인 추적

드론은 영어로 수벌을 뜻한다. 공식적으로는 무인항공기(unmanned aerial vehicle, UAV)라 부른다. 깜찍한 이름과 달리 국제 분쟁 지역에서 테러 집단 지도자들을 찾아내 사살하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군대가 드론을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명 손상 우려가 없기 때문이다. 조종사는 안전한 지상 기지에서 드론이 보내온 영상을 보며 적진을 구별하고 공격 지시를 내리면 된다. 과학자들이 드론에 주목한 이유도 비슷하다. 드론은 과학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서 연구에 귀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영국 동물보호단체의 불법 여우 사냥 감시 드론.

NOAA가 개발한 드론 '아치(Archie)'는 소음이 적어 펭귄이나 물개, 고래에게 별 영향을 주지 않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내부에는 위성항법장치(GPS)와 3차원 공간에서 회전 상태를 파악하는 자이로스코프, 이동 상태를 알려주는 가속도 센서를 장착하고 있다. 연구진은 앞으로 드론에 바다동물에게 추적 표지를 다는 장치도 추가할 예정이다. 피부 표본 채취 장치도 고려하고 있다. 지금은 과학자들이 작은 보트를 타고 거친 바다를 헤치며 몇 시간씩이나 추적해야 겨우 고래에게 표지를 달 수 있다.

지상에서는 밀렵을 감시한다. 세계야생동물보호기금(WWF)은 지난해 말부터 인도와 네팔에서 호랑이와 코끼리, 코뿔소 밀렵을 감시할 고정날개형 드론을 운영하고 있다. 구글도 이 프로젝트를 후원하고 있다. 영국의 동물보호단체는 귀족들의 여우 사냥이 법의 한계를 벗어나는지를 감시할 헬기형 드론을 띄우기도 했다.

사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오래전부터 드론을 과학 연구에 이용해왔다. NASA의 연구용 드론은 노스럽 그러먼사의 글로벌 호크로, 미 공군이 현재 군사용으로 쓰는 것과 같다. 글로벌 호크는 민간 항공기는 올라갈 수 없는 지상 20㎞까지 올라가 대기 상태를 측정할 수 있다.

글로벌 호크는 기체 가격만 2000만달러나 된다. 하지만 최근 기술 발전에 따라 수백~수천 달러짜리 소형 드론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과학자들은 드론을 구입해 각자 용도에 맞는 센서를 장착해 연구에 쓰고 있다.

미 콜로라도대 연구진은 날개 길이 3.2m짜리 드론으로 허리케인을 추적할 계획이다. 이미 2000년에 극지방에서 얼음 상태를 측정한 바 있다. 허리케인이든 영하 40도 극지든 그전에는 과학자가 직접 탐사할 수 없던 곳이다.

기술적, 법적 한계 극복이 과제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지난 16일 자에서 "드론이 과학 연구에 폭넓게 쓰이려면 기술적·법적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심현철 KAIST 교수(항공우주공학과)는 "레이더는 대형 항공기에 장착해 다른 비행 물체를 감지할 수 있지만, 소형 드론에 쓰기엔 장비가 크고 비싸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대신 저렴한 카메라를 이용했다. 드론 컴퓨터는 카메라가 찍은 영상을 분석해 비행 물체가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는지 알아낸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카메라 영상으로 하늘과 지평선을 구별해 드론이 자신의 고도와 방향을 알아내도록 했다.

드론은 혼자보다는 여럿이 더 낫다. 드론끼리 통신이 가능하면 동시에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 한 대가 망가져도 다른 드론이 대체할 수도 있다. 심현철 교수는 "우리나라가 발달한 LTE 통신을 이용하면 훨씬 쉽게 드론 간 통신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적 규제도 해결해야 한다. 미 연방항공청(FAA)은 과학 연구라도 드론을 조종하려면 일일이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한 번 허가로 비행 가능한 범위는 32㎢다. 콜로라도대 연구진이 미국을 관통하는 허리케인을 드론으로 추적하려면 무려 59건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드론의 무게는 12㎏ 미만이어야 하고, 사람 눈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만 비행할 수 있다.

다행히 FAA는 작년부터 민간의 드론 활용을 위해 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국토해양부가 관련 법을 개정하려고 준비 중이다. 심현철 교수는 "드론은 투자만 적극적으로 이뤄지면 우리도 선진국에 뒤처지지 않고 따라갈 수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