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3월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LIG건설이 발행한 기업어음에 투자 적격인 A3-신용등급을 부여했다. 당시 신평사들은 LIG건설의 모기업인 LIG그룹의 자금 지원을 전제로 신용등급을 분석했고, 이 때문에 실제 기업 재무 상태보다 등급이 높게 나왔다. 하지만 기업 경영 상태가 악화되자 그룹은 기대와 달리 자금 지원을 하지 않았고, LIG건설은 곧바로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입게 됐다.

신용평가사들의 '뒷북 등급 조정'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신용평가사가 '신용'을 잃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신용등급 하향 조정은 통상 마지막에 가서야 이뤄진다. 지난해 말 국내 신평사들은 극동건설과 함께 법정관리 신청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웅진홀딩스에 최고 A-등급까지 부여했다가 사태가 터지자 D등급으로 강등했다. LIG건설도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에야 신용등급이 내려갔다. 신평사들의 뒤늦은 등급 조정의 피해는 투자자들이 고스란히 입게 된다.

국내 신용평가 업계는 한국기업평가(034950), 한국신용평가, NICE신용평가 등 3사의 과점 체제다. 채권을 발행하려는 기업은 신용평가사 2곳 이상으로부터 등급을 받아야 하는 '복수평가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구조상에서 발행 기업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신평사들은 기업을 평가해주고 받는 수수료를 주요 수입원으로 하기에 기업의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것이다.

작년 초 금융 당국은 신평사들의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독자신용등급 도입안을 발표했다. 기업 자체의 기초체력을 독립적으로 평가한 신용등급과 모기업 등 외부 지원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최종 등급을 분리해 발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얼마 안 돼 독자신용등급 도입은 유명무실해졌다.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독자신용평가를 통해 계열 기업들의 신용도가 떨어지면 기업들이 더더욱 어려워진다는 여론 때문이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우리나라처럼 업종도 다르고 규모도 다른 기업들이 그룹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는 특수한 지배 구조일수록 투자자 보호를 위해 독자 신용등급 도입이 필요하다"며 "신평사들이 고객인 기업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