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채소를 사거나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처럼, 자동차를 살 때도 생산지를 따져보는 것이 좋다. 같은 모델이라도 어느 국가에서 만들었는지에 따라 자동차의 특성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생산한 자동차는 공장이 위치한 국가 소비자의 선호와 도로환경, 운전습관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다.

한국에서 탔던 현대자동차'그랜저TG'와 미국에서 탄 '아제라(그랜저TG 미국명)'는 운전석에 앉는 순간, 같지만 다른 '이란성(二卵性) 쌍둥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다. 따라서 일본 혼다의 준중형 해치백 '시빅 유로'를 탈 사람이라면 일본차에 대한 편견을 한 수 접어 두는 것이 좋다. 시빅 유로의 고향은 영국이다.

영국산 일본차, 시빅 유로.

◆ 해치백 공간 활용성 높아

시빅 유로는 기존 세단형 시빅을 기본으로, 뒷모습은 유럽인들이 선호하는 해치백(트렁크와 뒷좌석을 터 놓은 방식)을 붙여놨다. 준중형 차체에 뒤는 뭉툭해 혼다의 하이브리드 자동차 'CR-Z'를 연상시킨다. 비록 우리나라에서 아직 인기가 없는 해치백이지만, 한 번 써보면 실용성에 감탄하게 된다.

시빅 유로의 뒷좌석은 필요에 따라 접었다가 세울 수 있다. 뒷좌석을 접으면 트렁크게 골프백이 실릴 정도로 큰 공간이 확보된다.

뒷좌석에 사람이 앉을 때는 등받이를 세워 뒀다가, 트렁크에 많은 짐을 실을 때는 앞으로 접어 수납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시빅 유로의 트렁크만 놓고 보면 골프백이 실리지 않았지만, 뒷좌석을 앞으로 접자 거뜬히 실리고도 공간이 많이 남았다. 준중형 차량 운전자의 상당수가 젊은 신혼부부나 자녀가 어린 가정의 가장이라는 걸 감안하면, 뒷좌석에 처음부터 큰 공간을 할애하는 건 낭비일 수 있다.

◆ 세단보다 단단한 하체, 엔진 세팅은 아쉬워

단순히 해치백 방식이라고 해서 이 차의 이름을 '유로'로 붙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빅 유로를 몰고 금요일 퇴근 시간 경인고속도로를 달려봤다. 주말이 시작하는 금요일 오후 경인고속도로는 적당량의 차들이 점거하고 있어 '손맛(핸들링)'을 테스트 해보기에 좋다. 기존 세단형 시빅과 시빅 유로의 충격흡수장치(서스펜션)는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시빅 유로가 연속적인 방향 전환 시 하체를 꽉 잡아줄 수 있도록 더 단단하게 조율해 놨다.

시빅 유로의 실내 인테리어. 핸들과 센터페시아, 경제주행 버튼, 정보창(사진 왼쪽 위에서 시계방향). 에어컨을 켠 시내 주행 연비는 8.3km/L로 측정됐다.

실제로 안전속도를 유지하면서 차량들 사이를 빠져나가는 맛이 일품이었다. 해치백 특성상 차가 약간 짧아 스포티한 주행감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속도를 내며 치고 나가다가 브레이크를 밟으면 안정적으로 속도를 줄여주는 브레이크도 유럽 감성 그대로다.

흔히 한국 차의 브레이크가 차를 멈추는데 사용한다면 유럽 차의 브레이크는 속도를 줄이는데 사용한다고 말한다. 이를 두고 '브레이크가 밀린다'고 하는 이도 있지만, 안전속도만 유지한다면 차가 급하게 멈추며 불쾌감을 일으키는 것 보다 안정적으로 차를 세우는 쪽이 더 낫다.

시빅 유로의 외부. 상어 지느러미 모양의 안테나, 후미등, 알루미늄 휠, 전조등(사진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

다만 시빅 유로의 엔진은 다소 아쉽다. 이 차는 1.8리터(L) 직렬 4기통 엔진을 장착해 최대 출력 141마력, 가속도와 관계 있는 최대 토크는 17.7kg·m다. 준중형 차 치고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최대 출력은 엔진의 1분당 회전수(rpm)가 6500일 때, 최대토크는 4300일 때 발휘된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도 한 박자 늦게 속도가 치고 올라간다는 뜻이다. 시내 주행에서라면 엔진 rpm이 이처럼 높게 올라가도록 가속페달을 밟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물론 연비에도 좋지 않을 것이다.

시빅 유로의 가격은 3150만원으로 국산 해치백 'i30(1820만~1895만원)'와 비교하면 비싸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고급스런 실내 인테리어와 유럽적인 주행 감성, 거리에 널린 세단의 디자인이 질렸다면 한 번쯤 고려해 볼만 한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