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순위 13위인 STX그룹에 대한 구조조정이 삐걱대고 있다. 채권단이 서로 눈치를 보면서 자기 이익을 챙기는 바람에 구조조정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 11일 STX그룹의 주 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STX 계열사들의 대출이 연체되는 상황을 시정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산업은행이 좀 더 책임감을 갖고 구조조정에 임해달라는 요구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13일엔 "강덕수 회장 개인이 맡긴 STX 주식을 처분하기로 방침을 세웠다"고 밝혔다. 담보권을 행사해 한 푼이라도 더 건지겠다는 뜻이다. 다른 채권은행들도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해 '마이웨이'식 행보를 보이고 있다.

◇채권단 "산업은행 너무 몸 사린다"

STX그룹 계열사 중 최근 STX엔진은 380억원, STX중공업은 308억원의 대출을 연체했다. 지난 4월 초 STX조선해양 등 계열사들이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한 뒤 원활한 자금 지원이 이뤄지지 못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STX조선해양을 비롯한 STX 계열사들은 채권단과의 자율협약이 정식 체결된 것이 아니다. 채권단의 실사가 진행 중이며, 그 결과에 따라 이르면 다음 달부터 줄줄이 협약이 체결돼 본격적인 자금 지원이 이뤄진다. 이때까지는 채무 재조정을 받은 것이 아니어서,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을 갚아나가야 한다. 하지만 자금이 부족한 STX 계열사들은 갚을 방법이 없다. 그래서 일단 주 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 STX그룹 계열사들에 지난 4월 이후 1조900억원을 지원해, 발등의 불을 꺼주고 있다.

그런데 이 자금으로는 충분치 않아 STX 계열사들의 연체가 발생하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좀 더 책임감을 갖고 자금 지원을 해줘야 하는데, 채권단 일원의 역할 정도만 하려고 한다"며 "그러다 보니 지원이 충분치 못해 연체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출 연체가 발생하면 이는 곧바로 부실 여신으로 분류돼, 대손충당금(대출을 떼일 경우에 대비해 미리 마련해 놓는 금액)을 쌓아야 하고, 이는 장부상 손실로 기록된다. 그래서 다른 채권 은행들은 급기야 산업은행에 추가 자금 지원 방식으로 연체 상황을 해소해 달라는 공문을 보낸 것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자율협약이 정식 체결될 때까지 현 상황이 지속되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강덕수 회장 개인 제공한 STX주식 처분 예정

그러나 산업은행 역시 다른 채권단에 불만이 많다. 이명재 산업은행 실장은 "우리는 과거 우리가 해왔던 것처럼 구조조정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산업은행 다른 관계자는 "추가 자금 지원이 잘 이뤄지지 못하는 것은 다른 채권은행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기 때문"이라며 "우리가 전적으로 희생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은행들이 제 잇속 차리기에만 급급하다고 비판한다.

실제 우리은행은 강덕수 회장과 STX 계열사인 포스텍에 700억원을 빌려주면서 담보로 잡은 ㈜STX 주식 653만주(10.8%) 가운데 강덕수 회장 개인이 제공한 주식을 처분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우리은행은 당초 653만주 전체를 팔려고 했다. 그러나 그럴 경우 ㈜STX의 다른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되면서, 현 체제대로의 구조조정이 차질을 빚을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은 주식 처분을 보류해 왔는데, 포스텍이 제공한 것은 놔두고 강 회장 개인이 담보로 제공한 주식만 팔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653만 주 가운데 절반 정도 된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금융 당국 관계자는 "딱히 뭐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협조가 잘 안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은행 관계자는 "단순히 주식을 시장에 내놓는 것과, 추가 자금 지원을 하는 구조조정 사이엔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담보 가치가 더 내려가기 전에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채권단이 서로 갈등을 빚고 있지만, 금융 당국의 조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김진수 금융감독원 기업금융개선국장은 "실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금융 당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에 불만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