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의 신개념 세단 그란투리스모(GT)는 애플 태블릿PC '아이패드'에 견줄 만 하다. GT는 기존 세단에 앞바퀴와 뒷바퀴 간격을 넓히고, 뒷좌석을 트렁크 쪽으로 밀어 뒤에 탄 동승자들의 공간을 최대한 확보한 차다. 실제로 5시리즈 GT 뒷좌석에 앉아 보면 7시리즈 못지 않은 공간감에 감탄하게 된다. 세단이면서 공간 활용성까지 추구하는 점이 이동성과 큰 화면을 동시에 만족하는 아이패드와 유사하다.
그러나 GT는 같은 이유로 외면을 받기도 쉬운 차다. 앞·뒤 바퀴 간격을 늘리다 보니 독일차 특유의 칼날 같은 선회력은 무뎌지고, 뒷좌석에 내어준 트렁크 공간은 턱없이 비좁게 느껴진다. 아이패드가 아이폰 보다는 무겁고, 맥북에어(노트북PC)보다 성능이 떨어진다며 외면하는 사람이 많은 것과 같은 이치다.
BMW가 이번에 새로 출시한 320d GT는 어떨까. 다음달 정식 출시될 320d GT를 인천 영종도 일대에서 시승해봤다.
◆ 5시리즈에 맞먹는 뒷공간…순발력은 아쉬워
BMW 320d GT 운전석에 앉으면 이 차가 기존 320d를 쏙 빼닮았다는 점을 알게 된다. 핸들이나 와이드 내비게이션, 오디오·공조 장치 등 실내 인테리어에 크게 변화를 주지는 않았다. 다만 운전석에 앉아 뒷좌석 쪽을 바라보면 확실히 320d보다 넓어진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무릎 공간을 빼고도 반뼘 정도 여유가 남기 때문에 4명이 장거리 여행을 떠나더라도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란투리스모'라는 말도 장거리 여행에 적합한 차량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다. 계량화 할 수는 없지만 뒷좌석 쿠션도 기존 320d와 비교하면 푹신한 것처럼 느껴졌다.
썬루프는 파노라마 썬루프로 바뀌었다. 320d는 천장의 절반 정도만 열 수 있었지만 GT는 천장의 70% 이상을 열 수 있어 날씨 좋은 날 열고 달리면 햇볕을 실내로 받아들일 수 있다.
주행 성능은 어떨까. 320d GT의 시동을 걸고 차가 별로 없는 공항로를 따라 달려봤다. 시속 50km~80km 안팎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구간에서는 기존 3시리즈의 주행감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나 고속구간에서의 주행능력은 다소 답답했다. 무난하게 달리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신호 대기 후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자 반 박자 늦은 순발력이 느껴졌다. 마치 차 뒤에 무거운 짐차를 달고 달리는 느낌이었다. 이 날 길을 안내해준 BMW의 스포츠유틸리티차(SUV) 'X1'을 따라 잡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이는 320d의 엔진은 그대로 둔 채 공간만 확장한 GT의 특성 탓이다. 320d GT는 직렬 4기통 2리터(L)엔진을 장착해 최고출력 184마력, 가속력과 관계 있는 최대토크는 38.8kg·m다. 320d와 한 치 오차 없이 같다. 그러나 이 차의 무게는 1565kg으로 1430kg인 320d에 비해130kg 이상 무겁다. 그냥 빈 차로 달려도 GT가 성인 두 명을 싣고 달리는 것과 같으니 순발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선회 능력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 차의 앞·뒤 바퀴간 거리는 320d에 비해 11㎝ 더 길다. 앞·뒤 바퀴간 거리가 멀면 핸들을 돌렸을 때 차 전체가 방향을 선회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그 만큼 길다. 특히 빠른 속도에서 반복해서 좌·우로 방향을 바꿔보면 이 같은 특성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320d가 보여 줬던 칼날 같은 선회력을 GT에서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원래 BMW 3시리즈는 '스포츠 세단'을 표방하지만 GT만은 예외인 듯 하다.
◆ 비싼 가격이 흠, 320d Vs. GT
차가 무겁다 보니 연비는 다소 낮아졌지만 GT 역시 여전히 경제적인 차다. 320d의 괴물 같은 연비(18.5km/L)보다는 낮지만, 320d GT는 공인연비가 1L 당 16.2km에 달한다. 디젤 50L만 채우면 800km 정도는 운행할 수 있다.
용량 조절이 가능한 트렁크 공간도 이 차의 장점이다. 이 차의 트렁크 공간은 520L로 기존 3시리즈보다 40L 넓다. 차에 두 사람만 탄다면 뒷좌석을 접어 1600L까지 공간을 확장할 수 있다. 어림잡아 골프백 3개 정도는 넉넉하게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비싼 가격은 아쉽다. 320d GT의 가격은 5430만~6050만원으로 한 단계 위 등급인 520d와 비교하면 겨우 200만원 정도 싸다. 최근 BMW가 5시리즈 부분변경모델(페이스리프트) 출시를 앞두고 대대적인 할인을 제공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차 가격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GT 디자인의 독특함과 공간 활용성을 원한다면 320d GT를, 스포티한 주행 감성을 포기할 수 없다면 320d를 선택할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