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회계사를 만나면 "요즘 일할 맛이 안 난다"는 얘기를 자주 듣습니다. 돈줄을 쥐고 있는 기업 눈치를 봐야 하는 것도 서러운데, 심지어 요즘엔 툭하면 투자자들로부터 소송이 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회계법인 임원은 "이곳 저곳에서 치이는 게 샌드백이 따로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법 제21형사부는 최근 부산상호저축은행의 외부감사를 소홀히 하고 분식회계를 눈감아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D회계법인 공인회계사 두 명에게 징역2년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습니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은 부실 감사에 대해 징역형이 선고된 것은 드문 일"이라며 "이번 형사 처벌 선고가 회계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클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기업이 작정하고 숨기면 감사를 제대로 하기 힘들다"며 "책임을 똑같이 져야 한다는 것은 억울한 일"이라고 호소했습니다.
회계사의 수난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A회계사는 최근 한 코스닥 상장사의 회계감사를 실시한 뒤 '감사의견 거절'을 결정하자 업체 대표로부터 "네 딸이 ○○초등학교 ○학년 ○반인 거 다 알고 있다"라는 협박문자를 받았습니다. 한동안 공포감에 전전긍긍해야 했음은 물론입니다.
B회계법인 회계사는 의견거절을 통보한 뒤 해당 기업의 투자자들이 회사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통에 한동안 출근을 하지 않고 도망 다니기 바빴다고 합니다.
지난 2011년에는 회계법인이 기업의 협박에 거절이었던 감사의견을 적정으로 바꿔준 사건도 있었습니다. 당시 코스닥 C업체의 감사의견을 번복했던 D회계법인은 한국거래소 조사에서 "담당 회계사가 C업체의 회유와 협박으로 보고서를 임의로 고쳤다"고 진술했습니다.
회계사들은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구조적 문제에 있다고 말합니다. 수임료를 기업이 회계법인에 주다 보니 회계법인이 기업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겁니다. 한 회계사는 "원칙적으로 보면 수임료는 회계 정보를 이용하는 기업의 주주가 내는 것이 맞지만 현실적으로는 당연히 불가능하다"며 "지금의 구조에선 회계법인이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고 지적했습니다.
대안으로 나오는 것은 자유수임제를 배정제로 바꾸는 것 정도입니다.
지난 1981년까지 회계법인은 일감을 국가에서 지정받는 방식(배정제)이었습니다. 따라서 회계법인은 기업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감사가 가능했습니다. 당시 기업들 사이에서는 감사원보다 회계법인이 더 무섭다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82년 선진국들처럼 자유수임제가 도입됐고, 이후 기업은 좀 더 저렴하거나 자신의 입맛에 맞는 회계법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가 수주 경쟁'까지 벌어지며 툭하면 부실 감사 논란이 이는 환경이 조성된 겁니다.
물론 배정제라고 완벽한 정답은 아닙니다. 금융 감독 당국의 한 관계자는 "배정제를 실시하면 회계 수임료가 다시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회계사협회의 한 관계자도 "자유수임제가 효율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기업 눈치보기, 부실 감사 논란을 끊어내려면 머리를 맞대고 개선점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