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이자 세계 5위권의 건설 중장비업체인 두산인프라코어에선 벌써부터 올해 경영 목표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는 비관론이 나온다. 경영 목표를 세울 당시만 해도 '연결 기준 매출 8조8000억원, 영업이익 4600억원 달성'은 무난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이 회사가 전략 시장으로 꼽는 중국 시장이 살아날 조짐을 보이지 않고 현지 업체에 시장마저 급속히 잠식당하면서 경영 목표 달성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한국산(産) 굴착기는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국 시장을 휩쓸었다. 두산인프라코어·현대중공업 두 회사는 2003년까지 중국 굴착기 시장의 50% 가까이를 차지했다. 하지만 경쟁력을 갖춘 중국 업체들의 추격이 거세지면서 지난해 두산인프라코어의 중국 굴착기 시장점유율은 약 9%대로 떨어졌다. 현대중공업도 8%대로 주저앉았다.
철강업체 포스코는 아예 올해 매출 목표를 지난해 매출보다 낮게 잡았다. 기업이 성장 목표를 마이너스(-)로 잡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포스코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前年)보다 9% 줄어든 35조6650억원. 올해 매출 목표는 여기서 또 10% 줄어든 32조원으로 낮췄다. 포스코 관계자는 "유례없는 세계 철강 시황의 악화와 공급 과잉, 여기에 국내 건설·조선 분야 침체로 철강 수요가 대폭 줄어든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두산인프라코어와 포스코의 현 상황은 최근 한국 제조업 대표 기업이 공통적으로 겪는 일이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의 약진 덕분에 한국 경제가 건실하게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머지 기업들은 속으론 곪아가면서 세계시장에서 위상이 계속 추락하고 있다.
본지가 전자·자동차·철강·조선·기계·건설·화학·해운 등 국내 8대 업종 대표 기업의 매출과 영업이익률을 5년 전과 비교·조사한 결과에서도 이런 추세는 고스란히 드러났다. 대부분 매출은 조금씩 늘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영업이익률이 2007년보다 높은 기업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단 두 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6개 기업의 이익률은 최소 반 토막 났다. 심한 곳은 85%나 줄었고 아예 적자로 전환한 기업도 있었다. 속으로는 곪고 있다는 뜻이다.
삼성전자와 함께 국내 양대(兩大) 전자업체인 LG전자는 지난해 매출이 2007년 수준으로 돌아갔다. 2009년 개별 회계 기준으로 30조원을 넘던 매출액은 지난해엔 25조4700억원으로 20% 가까이 줄었다. 2010년과 2011년엔 2년 연속으로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고, 지난해엔 영업이익률 0.2%를 기록하며 간신히 적자를 면했다.
세계 1위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도 최근 일감을 채우기 위해 저가(低價) 수주를 감수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 수주 물량이 줄어들면서 독(dock·선박 건조장)이 빌 수도 있다는 우려감 때문에 출혈 마케팅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2010년 3조6300억원에 이르던 영업이익은 지난해 3분의 2나 줄어든 1조28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고, 올해는 더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조선업 불황에 대비하기 위해 2008년 폴리실리콘(태양광전지의 소재)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이달 초 투자금 1200억원을 고스란히 손실 처리하고 사업에서 철수했다.
착시 현상을 불러온 삼성전자조차도 고민이 적지 않다. 휴대전화 부문은 지난해까지 최근 3년 동안 스마트폰 판매 호조에 힘입어 매출이 매년 20% 이상씩 늘어났지만 TV·반도체·LCD(액정 화면) 부문은 사실상 매출 정체 상태를 겪고 있다. 삼성전자 고위 임원은 "스마트폰이 없었으면 어찌 됐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면서 "스마트폰 이후엔 무엇으로 먹고살지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조철 산업연구원 주력산업팀장은 "한국의 주력 산업이 노후화하고 신산업을 찾는 데 실패한 결과"라면서 "기업이 신사업이나 신수종 사업에 적극 진출할 수 있도록 제한이나 규제를 없애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