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2위 자동차 회사인 혼다가 이달 초 한국 지사에 한국산(産) 부품 구매 전담사무소를 설치했다. 연간 400만대 이상 파는 혼다는 작년 한국에서 4000대도 못 팔았다. 혼다 입장에선 한국이 전체 판매의 0.1%도 안되는 보잘것없는 시장이라 할 수 있다. 올 들어 엔화 대비 원화 가치가 10% 이상 올라 한국 부품의 가격 매력도 떨어지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왜 한국에 구매 전담사무소를 설치했을까. 한국산 자동차 부품 경쟁력이 답이다. 가격 대비 품질이 높아 장기적으로 구매처를 확보해 놓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혼다코리아 관계자는 "미국·중국과 달리 공장도 없는 한국에서 부품을 사가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차 업체, 한국에 부품 구매 부서 설치

혼다만이 아니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의 한국 부품 구매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미국 포드BMW·벤츠 등 유럽 고급 차 업체들 역시 매년 한국 부품을 사들이는 규모가 증가한다. 지난 10여년간 연평균 24%씩 늘었다. '급증'이라고 표현할 만하다. 2000년 21억달러(2조3500억원)였던 수출이 2011년엔 231억달러(26조원)로 10배 이상으로 커졌다. 부품 수출의 선두에는 현대모비스(제동장치·램프류), 한라공조·만도, 삼성SDI·LG화학(전기차용 배터리) 등 대기업이 있지만, 중소 부품 업체들도 급속히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크라이슬러와 포드도 한국지사에 각각 RSO(Regional Sourcing Office)와 STA(Supplier Technical Assistant)라는 이름의 구매 담당 부서를 두고 있다. 포드의 미국 본사 구매본부에서는 올 8월 한국을 찾아와 삼성과 LG그룹 관계자들을 만나, 전기차 부품 관련 추가 구매계약을 맺을 예정이다.

회사 관계자는 "이제까지 한국부품 구매 액수가 연간 5000억원 수준이었는데, 이번 계약으로 1조원대가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포드 STA팀은 온도·습도 센서 전문 업체인 원진일렉트로닉스 제품을 사서 미국 포드 공장에 보내는데, 이 회사 제품이 포드 전체 차량 4대 중 3대꼴로 들어간다.

BMW·벤츠·아우디·재규어·랜드로버 등 유럽 업체들도 한국 부품 구매 부서를 운영 중이다. BMW코리아는 지난 5년간 3조원어치의 부품을 사서 독일로 보냈다.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은 "BMW 그룹은 한국에서 판매자일 뿐만 아니라 구매자"라고 말했다. 지난해 4월엔 독일 뮌헨 BMW 본사에서 한국 기업 11곳을 초청해 '한국 부품 업체의 날'을 열고, 이 중 6개 업체에 입찰 기회를 주기도 했다.

차세대 자동차 부품 주도권 쥐어야

해외로 팔려나가는 한국 자동차 부품 중 약 70%는 해외에 공장이 있는 현대·기아차 등으로 가는 물량이다. 현대·기아차의 해외 생산이 급증함에 따라 국내 부품 업체들이 동반 성장한 효과가 크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산업연구원 조철 주력산업팀장은 "해외 완성차 업체들이 글로벌 경쟁자로 급부상한 현대·기아차를 뜯어본 뒤 가격 대비 경쟁력 있는 부품에 혀를 내두른다"며 "결국 완성차의 경쟁력은 부품 하나하나의 제조 실력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부품산업진흥재단과 산업연구원이 2004년과 2012년 중견 부품 업체 26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 부품의 내구성이나 감성품질, 정밀도가 일본의 93% 수준까지 도달했고, 가격은 일본 대비 87%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 부품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한국산과 비교할 땐 여전히 품질 격차가 10년 전 수준에서 획기적으로 좁혀지지 않은 걸로 나왔다.

특히 앞으로 내연기관 의존도가 낮아지고 친환경차 생산이 늘어날수록, 국내 후발 부품사들이 선전(善戰)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관계자는 "보쉬컨티넨탈이 가진 원천기술을 단숨에 따라갈 수는 없지만, 비교 우위를 갖춘 배터리·모터 등 친환경차 관련 부품에 집중하면 적지 않은 업체들이 글로벌 톱 부품사 반열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