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그룹이 해외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법인의 자산 총액이 5조70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그룹 대부분은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두고 있는 것은 세금 탈루나 비자금 조성 목적이 아닌 정상적인 경영 활동 과정의 결과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재벌닷컴 등에 따르면, 자산 1조원 이상 민간그룹 가운데 조세피난처(tax haven)로 알려진 케이맨군도·버진아일랜드·파나마·마셜군도·말레이시아 라부안·버뮤다·사모아·모리셔스·키프로스 등 9개 지역에 해외법인을 두고 있는 곳은 24개 그룹이었다. 이들 그룹이 갖고 있는 현지 법인은 모두 125개로, 자산 총액은 5조6900억원에 달했다.

그룹별로는 SK그룹이 파나마 52개를 포함해 가장 많은 63개 법인을 갖고 있었다. 이어 롯데그룹 12개, 현대그룹·동국제강그룹 6개, STX그룹 5개, 한화그룹 4개, LG그룹·대우조선해양·현대중공업그룹·동원그룹 3개 순이었다. 삼성그룹은 파나마에 2개가 있었다. 자산을 보면, 4개 법인을 두고 있는 한화그룹이 1조6822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SK그룹이 1조3267억원, 대우조선해양 7849억원, 포스코그룹이 4660억원이었다.

9개 지역은 과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세피난처로 지정했던 곳으로, 세율이 매우 낮고 금융 규제가 비교적 적은 곳이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설립하면, "조세 회피 등을 위해 유령법인을 설립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

기업들의 설명은 다르다. SK그룹 관계자는 "파나마에 있는 52개 법인은 모두 SK해운이 만든 것으로 해운업은 특성상 용선(傭船) 계약을 맺을 때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한다"면서 "모두 재무제표에 드러나는 부분으로 불법 자금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한화그룹도 "케이맨군도와 버진아일랜드에 있는 3개의 법인은 중국과 독일의 태양광 업체를 인수하면서 딸려온 것일 뿐"이라면서 "2010년 이전에 우리가 조세회피지역에 법인을 설립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해명했다. 다른 그룹들도 "해당 법인은 사업 보고서에 모두 적시한 것"이라며 "문제가 되면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125개 법인 가운데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자산이 전혀 없거나 매출 실적이 없는 법인이 전체의 57%인 71개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기업들은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설립하는 것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필요한 시점에 빠르게 해외 투자에 나서기 위해 금융 규제가 적고 해외 금융시장 접근성이 좋은 지역에 법인을 세우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적법 절차를 통해 법인을 설립하고 자산을 보유한 기업까지 모두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