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 그룹들은 6월 임시국회 개막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임시국회에서 대주주 적격성 심사 강화를 골자로 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집중 논의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적격성 심사 강화는 금융회사 대주주가 횡령·배임죄를 저지르면 해당 회사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하는 제도다.

생명·화재·증권·카드 등의 금융 계열사를 두고 있는 삼성그룹은 당장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만에 하나 대주주가 횡령·배임죄로 기소돼 의결권이 제한되면 순환출자 구도가 깨져 그룹 지배 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김승연 회장이 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한화그룹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한화그룹도 생명·화재·증권 등의 금융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재계(財界)가 6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바짝 긴장하고 있다. 4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된 '정년 60세 이상 연장' '대기업 등기임원 연봉 공개' 같은 법안보다 파괴력이 큰 규제 법안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어서다. 재계 관계자는 "4월 국회는 서막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적격성 심사 강화는 경영권 위협"

여야는 6월 임시국회에서 경제 민주화 관련 법안을 논의한다는 데 이견이 없는 상태다. 정무위원회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 강화'와 '순환 구조를 비롯한 지배구조 변경' 등 2건의 법안을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두 법안에 대한 여야 입장은 조금씩 다르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와 관련, 여당은 '보험·증권 등에 우선 실시한 뒤 점차 확대하자'는 입장인 반면, 야당은 '모든 업종을 대상으로 하자'고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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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격성 심사 강화는 대주주 전횡으로 금융회사가 사금고화되거나 부실화되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하지만 재계에선 "금융산업 건전성 확보를 내세워 대기업 대주주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 법안"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또 의결권이 제한되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재계 일각에선 특히 야당이 적격성 심사 시행 이후 이른바 '재벌 규제 3종 세트' 완성에 나설 수도 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재벌 규제 3종 세트는 '횡령·배임죄 저지른 대기업 대주주에 대한 징역형 선고→금융회사 대주주 적격성 심사로 대주주 자격 박탈→대기업 오너 사면 엄격 제한'을 말한다. 이 흐름이 현실화하면 대기업 오너의 권한을 순식간에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개정안도 논란될 듯

재계는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논의할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이나 통상임금 제도 개선 등 대부분의 법안이 기업 경영에 엄청난 부담이 될 내용이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최대 근로시간을 1주일에 52시간(월~금 40시간+연장 근로 12시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휴일 근로는 연장 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근로자가 1주일에 최대 68시간(월~금 40시간+토 8시간+일 8시간+연장 근로 12시간) 일을 해도 현행법으론 고용주를 처벌할 수 없다. 하지만 휴일 근로를 연장 근로 시간에 포함하면 근로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연장 근로는 고용 유연성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 기업들이 경기 상황에 따라 산출량을 조절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면서 "근로시간 단축은 임금 감소로 이어져 노사 갈등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임금 범위 조정도 임시국회 최대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야당과 노동계는 야근·휴일수당 산정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 산정 기준에 기본급뿐 아니라 상여금도 포함시킬 것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정부와 여당은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일괄 포함하면 기업 부담이 커진다"며 노·사·정 논의를 통해 해결하자는 입장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되면 기업들이 일시에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38조6000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재계는 이 외에도 정리해고 요건을 '긴박한 경영상 필요'에서 '경영 악화로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경우'로 강화하는 법안과 사내 하도급 근로자 보호를 위한 특별법도 기업 경영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법안 통과 전망은?

관심은 6월 국회 통과 여부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 강화 법안은 여야 간 입장 차이가 있어 아직 통과 여부가 불투명하다. 다만 여야가 적정한 선에서 타협하면 전격적으로 통과될 가능성도 있다. 근로시간 단축 문제는 여야가 큰 틀에서 공감하고 있어 통과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반면 통상임금 범위 조정은 여야 입장 차이가 커 통과 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모든 법안이 한꺼번에 통과되진 않겠지만, 재계를 압박하는 최근의 흐름을 감안하면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