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아시아 일일 승무원으로 변신한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CEO(가운데)

"커피, 차 그리고 브랜슨 중 어느 것을 고르시겠어요?"

덥수룩한 수염에 180cm가 넘는 신장의 건장한 남자가 빨간 승무원복을 입고 기내 서비스를 제공하며 물었다. 숱 많은 속눈썹과 붉은 립스틱은 오히려 공포스러울 정도다. 실제 이런 승무원이 있다면 해당 항공사의 매출은 가파르게 감소할지도 모른다.

뉴욕 타임스퀘어에 탱크를 몰고 등장하는가 하면, 열기구로 대서양을 건너는 등 기행을 일삼는 '괴짜 CEO' 리처드 브랜슨 버진(Virgin)그룹 회장이 이번에는 말레이시아 저가항공사 에어아시아의 승무원으로 변신하는 '사고'를 쳤다.

브랜슨 회장은 12일 호주 퍼스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향하는 에어아시아 D7-237 항공기에서 승무원 자격으로 탑승했다.

에어아시아와 버진그룹은 이번 행사에서 나오는 수익금을 호주 어린이재단에 기부한다. 브랜슨 회장의 또 다른 기행으로 기록될 퍼포먼스에 힘입어 이날 쿠알라룸푸르행 항공기는 377석이 거의 만석이었다. 티켓 한장당 100달러가 기부되며, 기내에서 팔린 물품 수익금의 10%도 기부된다.

하지만 그의 기내서비스는 외모만큼이나 친절하지 않았다. 브랜슨 회장은 이날 서비스를 시작하자마자 토니 페르난데스 에어아시아 회장의 옷에 음료를 쏟아 부었다. 고의성이 다분했다. 그러나 음료 세례를 받은 페르난데스 회장은 불평은커녕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 행사는 2년 전 두 회장 간 '내기'에서 시작됐다. 리처드 브랜슨 회장과 토니 페르난데스 에어아시아 회장은 지난 2010년 아부다비에서 열린 포뮬러원(F1) 경기에서 각자 가진 F1팀 순위를 놓고 내기를 했다. 지는 사람은 이긴 사람 항공사의 여성 승무원이 되는 것으로 했다. 페르난데스의 팀이 리처드 팀을 이겼고, 브랜슨 회장은 빨간 승무원복을 입고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왼쪽)과 토니 페르난데스 에어아시아 회장

브랜슨 회장은 상상하기 어려운 기행으로 자신의 사업을 알리는 인물로 유명하다. 1970년 음반사를 설립하며 사업을 시작한 리처드 회장은 현재 음반, 항공, 철도, 음료 등 400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버진그룹을 이끌고 있다.

학창시절 난독증을 앓았던 브랜슨 회장이 세계적인 CEO로 성장한 과정도 놀랍지만, 그동안의 기행도 그의 유명세에 한몫했다.

특히 지난 2002년 통신시장에 진출한 브랜슨 회장은 뉴욕 타임스스퀘어 광장에 거의 알몸으로 등장했다. 투명한 통신 가격 정책을 알리기 위한 파격적인 퍼포먼스였다. 그는 1986년에는 버진 애틀랜틱 챌린저 2호 보트를 타고 대서양을 최단시간에 횡단했고, 1991년에는 열기구를 타고 일본에서 캐나다까지 갔다. '버진 아메리카 항공'이 샌프란시스코~라스베이거스 노선에 취항했을 때에는 목사로 변신해 기내에서 사내 결혼을 주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