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9일 기준금리를 7개월만에 0.25bp(1bp=0.01%포인트) 전격 인하했지만 그동안 줄기차게 '금리인하'를 전망해온 시장 관계자의 반응은 싸늘했다. 불과 한 달만에 경기인식이 손바닥 뒤집 듯 바뀌어버린 것을 두고 일각에선 금통위를 더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냉소마저 나오고 있다. 시장을 올바른 방향으로 선도해야할 금통위가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은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낮춘 것은 지난해 10월 이후 7개월만이다. 그동안 한은에 금리인하를 압박해온 정부와 여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시장 관계자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김중수 한은 총재가 이번달에 밝힌 통화정책과 물가 등에 대한 입장이 지난 달과는 딴판이라는 이유에서다.

◆ 통화정책 충분히 완화적이라더니…"더 완화적일 필요 있어"

김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한 배경을 묻자 "(기준금리를)더욱 완화적으로 만들만한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면서 "일단 추경이 (통과)됐기 때문에 효과를 좀 더 극대화 시키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총재는 한달 전 같은 자리에서 "지금까지의 1년을 되짚어보면 통화정책이 (재정정책보다)더 완화적으로 움직여왔다"고 말했었다. 당시 연 2.75%의 기준금리를 '매우 완화적'이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 시장에서는 연내 기준금리 동결을 강하게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김 총재의 입장은 일관됐다. 그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정부와 여당의 줄기찬 기준금리 압박을 강하게 받아쳤다. 지난 3일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참석차 인도를 방문한 자리에서는 "지난해 7월과 10월, 기준금리를 총 0.5%포인트 인하한 것은 굉장히 큰 것"이라며 "한은은 1년 (시차가)걸리는 걸 깔아놨으니까 (정부에게)'이제 네 차례다'라고 말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 총재는 "정부와 국회가 힘을 합쳐 경제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동참하고 협력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고 입장을 180도로 수정했다.

◆ 하반기 물가 3%대 진입…"물가때문에 금리동결했다고 얘기 안 했다"

김 총재의 '물가상승'에 대한 우려가 잦아든 것도 눈에 띈다. 지난 달 김 총재는 기준금리 동결의 배경을 묻자 가장 먼저 인플레이션을 언급하면서 "아직까지 매우 안정적인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가진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하반기에 3%대 초반에 진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1%대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발언이었다.

그러나 이날 김 총재는 "하반기의 물가변화를 우려해서 지난달 동결했다고 얘기하진 않았다"고 해명하면서 "중앙은행이기 때문에 항상 물가에 관심을 먼저 표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장에서 "무책임한 말장난"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 시장 이끌지 못하는 금통위, "오히려 혼란 가중"

이날 예상치 못한 기준금리 인하 발표에 국채금리는 한때 급락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금리인하 결정이 발표된 직후 국채시장의 대표 금리인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날보다 8bp(1bp=0.01%) 내린 연 2.47%에 거래되기도 했다. 5년 물과 10년 물도 각각 8bp 가량 급락했고 20년 물과 30년 물은 각각 5~6bp 떨어졌었다. 그러나 한은의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국채 금리는 보합권에서 거래를 마쳤다.

금리인하를 예상했던 한 증권사 연구원은 "이제 금통위 의사록이나 기자회견을 가지고 다음 금리결정을 예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면서 "김 총재는 시장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고 얘기하지만 시장과 한은의 경기인식은 전혀 딴판이다"고 비판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중앙은행의 금리결정을 시장 참가자들이 미리 예측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시장금리가 움직여야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시장참가자들의 견해와 전혀 다른 의사결정을 했던 경우가 많아 금리조정으로 인한 경기조절 메커니즘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