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중고차 판매 사이트에 올라온 매물 대부분이 사고이력을 제대로 기재하지 않거나, 렌터카로 사용된 경력도 누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법상 범퍼·바퀴 흙받이(펜더) 등 안전과 직결되지 않는 부분에 사고를 당한 차량은 '무사고 차량'으로 표기해도 처벌하지 않는 허점 때문이다.
소비자들 사이에선 가격이 수천만에 이르는 중고차를 구매하는 사람의 권익 보호를 위해 가벼운 접촉사고 이력까지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사고 후 보험금 400만원 타고도 '무사고 차량'
6일 국내 대표적인 중고차 판매 사이트 'SK엔카'에 올라온 매물의 실제 사고이력을 조회해 본 결과, 대부분 자동차가 사고를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SK엔카 중고차 장터에서 이들 차를 버젓이 '무사고 차량'으로 거래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매물로 올라온 중고차의 실제 사고이력은 보험개발원이 제공하는 '사고이력 조회 서비스'를 이용하면 확인할 수 있다. 해당 차량이 사고가 나 보험금을 지급받은 적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해주는 서비스이다.
SK엔카에 등록된 차량들 중에는 사고가 나 보험금을 수령한 경험이 있음에도 '무사고'로 소개하거나, 사고 이력을 누락한 차량이 대부분이었다.
'완전 무사고' 차량이라고 밝힌 중고차 '기아 K5'를 조회해보니 다른 차에 피해를 입한 경력이 2번, 자차 피해를 당한 경력이 1번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역시 무사고 차량으로 등록된 BMW '미니 쿠퍼S' 차량의 경우 사고로 인해 438만7200원의 보험금을 지급받은 이력이 조회됐다. 보험금 규모로 볼 때 차량 파손 정도가 작지 않은 사고였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차 주인은 이 같은 사실을 명시하지 않았다.
사고 관련 기록을 밝히지 않은 한 아반떼 차량은 총 3번의 보험금 지급 이력이 있었으며, 그 중 자차 피해와 관련한 보험금 금액은 아직 확정조차 되지 않았다. 보험사에 사고가 접수는 됐지만, 사고 처리 절차도 완료되지 않은 차량이 매물로 나온 것이다.
렌터카 이력을 누락한 매물도 발견됐다. 한 K5 매물은 사고 이력은 없었지만 조회 결과, 첫 출고 후 렌터카로 사용한 이력이 발견됐다. 하지만 차 판매자는 이 같은 사실을 기재하지 않았다. 렌터카로 이용된 차량의 경우, 자가용 차에 비해 운전을 험하게 하고, 주행거리도 길어 타이어 등 소모품 마모 정도가 심하다. 따라서 중고차 가격도 자가용 차보다 낮게 책정된다. 이 K5 매물은 약 2년간 6만3000km나 운행했다. 개인용도 차량이라면 1년에 약 1만km~2만km 정도가 보통이다.
SK엔카 관계자는 "사이트에서 거래되는 차량들 중 SK엔카 '보증' 차량만 사고이력과 성능을 개런티(보증)한다"며 "그 외 차량들은 개인간 거래로 SK엔카가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 안전·성능 문제 없으면 '무사고 차량' 가능
이처럼 사고 차량들이 무사고 차량으로 둔갑된 것은 현행 '자동차관리법' 상 안전·성능에 직결되지 않는 한 사고차량으로 기록하지 않아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자동차관리법 58조는 '인터넷을 통해 자동차 광고를 하는 때는 자동차 이력 및 판매자정보를 게재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자동차 이력서에 속하는 '중고자동차 성능·상태 점검기록부'에는 '주요 골격 부위의 판금, 용접수리 및 교환이 있는 경우'만 사고차로 기재토록 하고 있다. 예컨대 보닛(후드)·바퀴흙받이·문짝(도어) 등 외관이 파손돼 수리한 경우는 사고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SK엔카·보배드림과 같은 중고차 사이트에는 중고차 성능·상태 점검기록부 상 사고차가 아니라면 '무사고 차량'으로 등록해도 문제가 없다.
류석일 한국소비자원 차장은 "무사고 차량에 대한 일반 소비자의 생각과 현행법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분쟁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며 "보험개발원 사고이력 등을 꼼꼼하게 살펴야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보험개발원 사고이력 조회 역시 만능은 아니다. 차 주인이 보험처리 하지 않고 자비로 사고를 해결한 경우 사고이력에 등록되지 않는다. 사고 뒤 보험개발원에 보고될 때까지 약 3개월의 시차가 있는 탓에 그 사이에 중고차 시장에서 처분하면 소비자는 알 길이 없다.
아직 사고이력 조회 절차를 잘 모르는 소비자도 적지 않다. 보험개발원 조사 결과 중고차 운전자의 40% 정도는 사전에 사고이력조회를 하지 않고 구매를 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중고차 구매 이후 분쟁을 겪었던 소비자의 18%가 차량사고 미고지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집계됐다. 사고이력 고지를 의무화할 경우 이 같은 분쟁은 방지할 수 있다. 1건당 3300원인 조회 수수료도 결코 싸지 않다.
김종훈 한국자동차품질연합 대표는 "사고이력 조회는 중고차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며 "이마저도 보험사를 거치지 않은 사고는 누락되는 등 허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