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이 최근 처럼 소비 투자 등 수요 부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에 대한 경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LG경제연구원은 6일 '일본형 저성장에 빠지지 않으려면' 보고서에서 일본 중앙은행이 1990년대 버블붕괴 이후 금리인하에 나섰으나 인하의 규모나 속도 측면에서 과감하지 못했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1990년대 초중반 일본의 정책금리는 경상성장률 수준을 지속적으로 웃돌았다. 일본은 2000년대 디플레이션이 한참 진행되자 제로금리를 채택하고 양적완화 등 당시로는 새로운 정책수단을 도입했으나 정책대응이 너무 늦어서 정책 지속성에 대한 의구심을 확대시키고 정책효과를 반감시켰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신속한 금리인하와 양적 완화정책을 쓴 것과 대조적이다.

보고서는 "우리나라도 특히 최근처럼 구조적 내수부진 요인들이 작용할 경우에는 높은 물가만큼이나 낮은 물가상승률에도 주의해야 한다"며 "인플레이션이나 자산가격 거품 등 부작용 우려가 크지 않다면 보다 신축적으로 금리정책을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필요하다면 인플레이션 목표치도 보다 탄력적으로 (높게) 수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고성장-저물가 시기에 형성된 낮은 인플레이션율은 개발도상국의 빠른 임금상승, 선진국의 대규모 양적완화 등으로 현재 세계경제 흐름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우리나라가 당장 일본처럼 디플레이션에 빠질 위험이 있는 것은 아니다"며 "하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개월 연속 1%대를 유지하고 있는데다 앞으로도 물가가 낮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면 디플레이션 경계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또 "원화가 빠르게 절상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내수확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비스산업에서 해외수요 유치에 주력하기보다는 수입에 대한 폐쇄성을 줄여 일본처럼 엔화절상과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는 상황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잠재성장률의 하락을 인정하고 재정의 지속적 확대나 부동산 경기 부양을 통해 무리하게 단기성장률을 끌어올리려는 노력도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수년간 대규모 재정지출과 사회간접자본(SOC) 확대는 민간 투자를 구축해 투자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큰 폭의 재정적자를 만성화시켰다는 점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인구고령화로 노동의 양적 투입 둔화는 불가피하지만 청년고용에 대한 지원을 통해 인적자원의 질이 손상되는 것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20년 전의 일본과 현재 우리나라를 비교해 보면 노동투입 측면에서는 우리가 더 심각하고 소비, 건설투자의 구조적 내수부진 가능성도 크다고 분석했다. 노후대비 부족에 따른 고령층의 불안감으로 인해 고령화가 오히려 소비성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경제의 성장속도에 비해 과도한 건설투자 비중도 장기적으로 조정될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일본보다 상황이 나은 면은 우리나라는 주요 선진국들과 소득수준 격차가 아직 크고 세계시장 점유율도 높지 않아 일본에 비해 추가 성장 여지가 있는 편이다. 또 과거 일본처럼 달러화 대비 환율 절상속도가 빠르지는 않고 주택가격 급락가능성도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