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 시장에 이변(異變)이 일어나고 있다. 전반적인 신차 수요 침체 분위기 상황 속에서 올 들어 4월까지 현대·기아차 등 국산 완성차 5개사의 레저용 차량(RV) 판매가 작년보다 25.5% 늘어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일부 차종은 계약금을 내고도 3개월을 기다려야 차를 받을 수 있다. 올 들어 국산 완성차 5개사의 세단 판매량이 작년보다 11.3%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이 영향으로 전체 승용차 판매량 중 RV 비중은 지난해(1~4월) 22.4%에서 올해(1~4월) 29%까지 치솟아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레저 인구 증가로 세단형보다 적재 공간이 넓은 RV 차량의 실용성이 부각되고 있고, RV 차량의 디자인과 편의장치가 비슷한 가격대의 세단형을 능가할 정도로 개선된 것이 RV 쏠림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RV 르네상스…"세단 못지않다"
현대차가 국내에서 판매 중인 세단은 총 10종. 이 중 에쿠스를 제외한 9개 차량의 올해 판매량이 작년보다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아반떼·쏘나타·그랜저 등 대표적인 베스트셀러도 예외가 없다. 제네시스처럼 조만간 신차 출시를 앞둔 모델의 경우 수요가 일시적으로 줄긴 하지만, 다른 차종은 그런 상황도 아니다.
반면 출시한 지 1년이 지난 현대차 싼타페는 아직도 '신차효과'를 누리고 있다. 지난달에만 7444대가 팔리는 등 올 들어 누적 판매량이 2만7000여대로 작년보다 3배 이상 늘었다. 업계에선 유독 새 차를 선호하는 국내 소비자 성향을 감안해 신차효과를 6개월 정도로 보고 있다. 그만큼 싼타페의 인기는 이례적인 현상이다.
올 초 출시한 싼타페 7인승 모델 맥스크루즈는 당초 판매 목표가 월 400대 수준이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600대 수준이 팔려 나가고 있다. 쌍용차의 11인승 차 코란도투리스모, 기아차 신형 카렌스, 한국GM의 소형 SUV 트랙스 등도 회사별 인기 모델로 떠올랐다. 덕분에 현대차의 RV 판매량은 작년보다 92.3%, 쌍용차는 41% 늘어나는 등 5개 업체의 RV 수요가 작년보다 25.5% 증가했다.
1990년대만 해도 전체 승용차 중 RV 판매 비중은 한자릿수를 맴돌았다. 2000년 현대차가 출시한 싼타페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돼 2002년 RV 비중이 42.5%까지 치솟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다양한 세단 모델들이 출시되면서 다시 RV 인기는 가라앉았다. 김상대 현대차 국내마케팅실장(이사)은 "예전엔 RV 차량이 시끄럽고 덜덜거리는 차로 인식됐지만, 요즘에는 디자인을 고급스럽게 바꿨고 승차감과 연비도 세단 못지않게 향상돼 소비자들이 선호한다"고 말했다.
◇벤틀리·람보르기니도 SUV 만들어
RV 차량 선호 추세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해외 자동차 업체들도 일제히 신모델 출시를 준비 중이다. 유럽 최대 자동차 업체 폴크스바겐은 3기통 1.0L(리터) 엔진을 장착한 SUV인 '타이군'을 개발하고 있다. 차 길이가 4m도 되지 않는 소형차다. 이제까지 레저용 차량은 만들어본 적 없는 수제 스포츠카 업체들조차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폴크스바겐그룹의 고급 차 브랜드인 벤틀리는 지난해 제네바모터쇼에서 SUV 콘셉트인 'EXP 9F'를 처음 선보였고, 람보르기니는 '우루스'를, 이탈리아 스포츠카 업체 마세라티는 '쿠방'의 출시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르노삼성도 극심한 판매 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RV 신차 출시를 택했다. 이 회사는 올해 말 모(母)기업인 르노의 소형 크로스오버 차량 '캡처'를 수입해 'QM3'라는 이름으로 판매할 예정이다. 르노삼성차 관계자는 "세단형 차량의 경우 국산차뿐만 아니라 저가 수입차와도 힘들게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라, 경쟁에서 빗겨나 있는 신형 SUV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RV(Recreational Vehicle ·레저용 차량)
미국에서는 침실과 취사 공간이 갖춰진 캠핑카를 지칭하지만, 국내에선 세단형 차량 대비 적재 공간이 넓고 차체가 높은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나 밴 등 다목적차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