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주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시중은행들은 지난해 하반기 10%대 금리 대출 상품을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서민금융을 강화하겠다는 발표도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현재 결과를 보면 절반 성공이라는 말도 쓰기 어렵다.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 등 시중 5개 은행의 관련 상품 대출 실적을 합쳐도 지금까지 1605건, 총 대출액은 60억원에 못 미쳤다. 8개월 동안 주요 은행 5곳을 통틀어 하루 7건 정도 대출이 이뤄진 셈이다.

사실 이 상품들은 은행이 자발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금융 당국이 작년 6월 "대출금리가 고르게 형성되지 않아 '금리 단층(斷層)' 현상이 생기고 있다. 이를 해소할 수 있는 10%대 금리 상품을 출시하라"고 은행권에 주문했기 때문이다. 등 떠밀려 만든 것이라 실적이 좋을 리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금융 당국은 올해부터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는 입장이다. 최수현 금감원장은 지난 3월 취임 직후 간부회의에서 "그동안 지지부진했는데, 서민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10%대 금리 대출이 늘어나도록 신경을 써달라. 금감원장으로 있는 동안 반드시 챙기겠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왜 10%대 금리 상품을 늘려야 한다고 다시 강조했을까. 그리고 그동안 왜 10%대 대출 상품은 실종됐을까.

은행에서 못 빌리면 이자 4~5배 내야

서민들이 은행 문턱을 못 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신용 등급이 낮거나, 담보가 없거나, 신용등급이 높아도 은행 대출 한도가 찼을 경우다. 그런데 은행에서 돈을 빌렸느냐, 은행이 아닌 다른 금융회사에서 빌렸느냐에 따라 이자 차이는 확연하다. 은행에서 제2금융권으로 옮겨 가면 금리가 갑자기 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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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의 가계 신용 대출 평균 금리는 6.9%였다. 중산층과 서민이 은행 다음으로 많이 찾는 신용카드 회사의 금리는 20.6%다. 캐피털사는 20% 중반이고, 저축은행의 대출 평균 금리는 거의 30%다. 저축은행에서도 돈을 빌리지 못해 대부업체로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39% 금리로 돈을 빌린다.

예를 들어 은행에서 1000만원을 빌렸을 때 한 달에 6만원 정도 이자를 내면 된다. 하지만 저축은행에서 빌렸으면 은행 이자의 4배인 25만원, 대부업체에서 빌렸으면 32만원을 매달 이자로 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상적이라면 10% 미만 신용대출(은행)→10%대 대출→20%대 현금서비스(카드사)→20%대 중후반(저축은행, 캐피털사)→30%대(대부업체) 식으로 이어지는 금융사 간의 역할 분담이 있을 법하다. 하지만 우리 금융시장에서 10%대 대출상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은행 벗어나면 금융 중산층에서 탈락

10%대 대출 상품은 저소득·저신용자에게 더 절실하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신용 등급 1등급인 고(高)신용자는 은행에서 8%, 은행이 아니라면 13% 금리로 신용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은행이냐 아니냐에 따라 금리 차이가 5%포인트 정도 난다.

하지만 신용 등급 10등급인 저신용자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12% 금리로 빌릴 수 있지만, 은행 아닌 금융회사로 가면 34% 금리로 빌려야 한다. 22%포인트나 차이가 난다.

이런 금리 구조는 악순환을 낳는다. 가뜩이나 소득이 부족한데 대출이자를 4~5배씩 물어가면서 제대로 된 금융 활동을 하기란 쉽지 않다. '은행 거래 단절→제2금융권 고금리 대출 이용→돌려막기와 다중 채무→파산(혹은 빚 탕감 프로그램 등 정책금융 이용)' 식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한번 은행에서 돈을 못 빌리기 시작하면, 금융 중산층에서 탈락하는 길로 접어들게 된다는 뜻이다.

서민금융 공급 부족이 일차 원인

10%대 금리 대출 시장이 사라진 것은 일차적으론 서민금융 공급 축소로 금융시장이 양극화됐기 때문이다. 2007년 서브프라임 금융 위기 이후 저소득층 비중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저신용층의 대출 비중은 2007년 26.8%에서 2011년에는 18.3%로 많이 축소됐다.

특히 저축은행은 서브프라임 금융 위기 이전에는 7~10등급 저신용자 대출이 8조원이 넘었지만, 부실 저축은행 구조 조정 여파로 저축은행이 가지고 있던 저신용자 대출 기능이 크게 위축됐다. 2010년 3월에 65조4000억원까지 갔던 저축은행 총여신이 2012년 9월에는 35조3000억원으로 급감했다. 서민금융의 구조에 큰 변화가 있음을 시사한다.

서민금융의 위축으로 수많은 서민이 40%에 가까운 대부업체 고금리 대출을 쓸 수밖에 없어 부채의 늪에 빠지게 된다. 대부업체의 대출 잔액은 2009년 말 5조9000억원에서 2년 뒤인 2011년 말 8조7000억원으로 48% 늘었다. 같은 기간 이용자 수도 167만명에서 252만명으로 늘었다.

국내 금융회사들의 실력 부족도 원인

은행들은 10%대 금리 대출 상품이 부진한 것에 여러 가지 이유를 댄다. 우선은 건전성 관리다. 신용 등급 6~8등급 대출이 늘어나면 부실이 함께 커진다는 얘기다. 은행 이미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말도 한다. 제2금융권보다는 낮지만 연 10%대 두 자릿수 금리를 매기는 대출은 "은행이 돈놀이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과 달리 국내 은행들의 신용 평가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10%대 금리 대출이 자리 잡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대출자가 빚을 갚을 능력이 있는지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10%대 대출을 아예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에서 저축은행 등 다른 금융회사들도 자유로울 수 없다. A저축은행장은 "저축은행들이 그동안 개인 대출보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 덩치가 큰 대출에만 경쟁적으로 전념했다. 대출자가 돈을 제대로 갚을지 판단할 능력이 저축은행엔 없다"고 말했다.

대출을 해 주고 나서 얼마나 손해를 볼 것인지 판단할 능력이 없으니 무조건 대출금리를 높여 받고 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