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54)씨는 요즘 30대 후반 아들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씨 아들은 작년 초 "부모님을 모시고 살겠다"며 4억5000만원을 들여 경기도 군포시에 있는 전용 151㎡짜리 아파트를 샀다. 대출이자로 매월 200만원가량을 낸다. 하지만 집값이 계속 떨어졌고, 이자 부담이 생각보다 컸다. 올 초 집을 내놓기로 했지만 살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정부의 4·1 부동산 대책이 나오면서 기대를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대출 부담이 큰 하우스 푸어 집을 사주는 제도가 생겼다고 들었는데 전용 85㎡ 이하 주택만 되더라고요. 돈을 벌려고 한 게 아니고, 큰 집 사서 가족이 같이 살자고 한 건데 집을 처분할 길이 막혔어요."

일러스트=김현지 기자

정부가 4·1 대책으로 주택 시장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전용 85㎡ 이하' 중소형 주택 위주로 정책이 짜여 있어 주택 시장에서는 아쉽다는 반응도 많다. 중대형 아파트 보유자, 수요자들이 정책에서 배제됐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수도권 주택 시장 침체의 핵심 원인 중 하나인 중대형 아파트 문제를 해결하는 추가 조치가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시적인 세제 혜택에 초점을 맞춘 만큼 자칫 이번 대책이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악재 겹친 중대형

수도권 중대형 아파트는 최근 주택 시장에서 가격 하락과 거래 침체 등 악재가 겹친 상태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주택 가격이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중대형 아파트는 중소형보다 하락 폭이 더 가파르다. 지난해 중소형 아파트 가격은 평균 4.5% 떨어졌지만, 중대형은 7.3% 하락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수도권 중대형 아파트 시가총액은 523조원 수준에서 올해 500조원으로 23조원가량 증발했다. 같은 기간 중소형 감소 폭은 5조원가량에 그쳤다.

주택 거래도 정체 상태다. 최근 4년간 수도권 중대형 아파트 거래는 2만~3만건 안팎으로, 전체 거래량의 14~17% 수준에 머물러있다. 소비자들의 발이 묶여 있다는 뜻이다.

중대형 아파트 문제는 건설 경기 침체의 원인으로도 꼽힌다. 중대형 미분양으로 자금난을 겪는 건설사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 사업을 벌였지만 분양이 잘 안 되거나 입주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자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는 건설사가 많다.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 부실이 커지면서 유동성 위기가 닥치는 식이다. 3월 기준 수도권 미분양 아파트는 3만2759가구. 그중 중대형은 1만9475가구로 59%에 달한다. 중대형 미분양 문제가 건설 경기에도 큰 악영향을 주고 있는 셈이다. 두산건설도 중대형 위주로 추진 중인 주상복합 아파트 사업(경기 고양시 탄현동)에 발목이 잡혀 자금난을 겪다 그룹 지원을 받아야 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평생 아파트 면적을 넓히는 것을 목표로 삼고 중대형 아파트를 사 노후 대비를 해 온 50대 베이비부머가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상황"이라며 "집을 팔기도 쉽지 않은 데다 집값이 떨어지면서 작은 집으로 옮겨도 손해를 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4·1 대책은 역차별"

주택 시장에선 기대를 모았던 4·1 대책이 되레 중대형 주택 보유자나 수요자를 오히려 역차별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중대형 아파트를 지원하기는커녕 정책에서 배제했다는 것이다.

이번 대책의 핵심 중 하나인 기존·신축·미분양 주택 양도세 면제안의 기준은 '전용 85㎡ 이하 또는 6억원 이하'다. 서울 강남의 10억원이 넘는 소형 주택은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중대형 아파트는 6억원만 넘으면 수혜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하우스 푸어의 주택을 매입하는 임대주택 리츠(REIT's·부동산투자신탁)도 전용 85㎡ 중소형 아파트가 대상이다.

건설산업연구원 허윤경 연구위원은 "4·1 대책을 보면서 소비자들이 중대형 주택을 사면 앞으로 정책에서 나오는 각종 혜택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불안을 느낄 수 있다"며 "기존 중대형 주택 보유자는 물론 잠재적인 중대형 수요자까지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주택 전문 중견 건설사의 한 임원도 "중대형 아파트가 부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잘못됐다"며 "주택 시장에서 여유 있는 사람들은 중소형 아파트를 자식들에게 사줘서 분가시키고, 작고 고급스러운 아파트로 갈아탄 지 오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