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경기의 장기 불황으로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해운사들이 자금조달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돈을 구할 수 있다면 하역에 사용하는 대형 크레인을 팔거나 운임료를 담보로 한 채권발행까지 가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자금줄을 쥐고 있는 은행들은 오히려 추가 부실을 우려해 지원을 꺼리고 있어 해운사들의 자금난 해법 찾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2일 금융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같은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증권 주식을 기초로 400억~50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EB)를 발행하기로 하고 이달 10일 이사회에서 의결하기로 했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현대증권 보통주 4403만3676주(25.90%), 우선주 903만7060주(13.57%)를 보유하고 있다. 주당 교환액은 8000원 선으로 알려졌다. 산은캐피탈을 비롯해 4개 금융회사들이 EB를 인수키로 했다.

EB는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나 다른 회사 주식을 특정 가격에 교환해 주기로 약속하고 발행하는 회사채다. 발행 후 1년 뒤에 주식 전환을 청구할 수 있는 BW(신주인수권부사채)나 CB(전환사채)와 달리 발행 후 한 달 뒤 주식으로 바꿀 수 있어 인수사 입장에선 현금화가 빠르다. 발행사는 2% 안팎의 금리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어 이자부담이 적다.

현대상선이 대규모 EB 발행에 나선 것은 3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가 불발됐기 때문이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만 5000억원에 달한다. 당장 이달 14일에 2000억원을 상환해야 하는 등 발등의 불을 꺼야하는 상황이다. 현대상선은 산업은행에도 'SOS'를 쳤다. 산업은행은 자산을 사들이거나 운임채권 등을 담보로 한 자산유동화대출(ABL) 방식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자체 조달여건이 되는 현대상선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한진해운은 최근 하역에 이용하는 대형크레인을 1600억원에 팔았다. 한진해운은 올해 총 1조원에 달하는 회사채·기업어음(CP) 만기가 도래해 자금 확보가 시급하다. 이달에만 2500억원의 만기 상환이 예정돼 있다.

이밖에 A해운사는 2000억원 규모의 신디케이트론(집단대출)을 추진 중이다. 통상 신디케이트론은 은행이 주간사로 선정돼 자금을 모아 대출을 해주는 것으로, 주간사인 은행의 신뢰도를 믿고 금융사들이 담보 없이 주로 투자한다.

그러나 해운업황 악화로 추가 부실의 우려가 커지자 은행들은 해운사 신디케이트론을 꺼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주로 캐피탈이나 증권 등 2금융권이 참여하고 있는데 부실 가능성을 이유로 담보를 요구하고 있다. 은행 한 고위관계자는 “이미 채권시장에서는 해운사들의 회사채가 정상적으로 통용되지 않고 있다”며 “해운사들이 크레인, 컨테이너 등 자산을 담보로 내놓고 있지만 은행들이 거들떠도 안 봐 이 것도 이제 한계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해운사가 운임료를 담보로 발행하는 ABL이 움직이는 '시한폭탄'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부동산 개발 시 건설사들이 자금조달을 위해 분양수익금을 상환재원으로 대출을 받는 PF ABCP(프로젝트파이낸싱 자산유동화기업어음)과 비슷한 구조다. 해운 경기가 좋지 못해 해상화물운임을 제때 받지 못한다면 곧바로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 따라서 원리금 상환을 위해서는 운임료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ABL을 발행하면 6개월간 월 평균 운임료 수입을 산출해 추가 담보 및 조기상환 여부를 결정한다. 운임료 수입이 약정한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리스크 헤지(hedge)를 위해 해운사가 추가로 담보를 내놓아야 한다. 운임 수입이 약정한 수준에 50%까지 떨어지면 조기 상환해야 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운임채권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려면 운임료를 인상해 수익을 확보해야 하는데 현재 해운 경기로서는 인상이 어려워 빚 부담이 더 늘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