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슈미트·제러드 코언 지음|이진원 옮김|알키|472쪽|2만원

오늘날 아프리카 콩고 여성 어부들에게 가장 중요한 생활 수단은 휴대전화다. 첨단의 스마트폰도 아니고 기본 기능만 갖춘 단말기다. 너도나도 장만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 전엔 물고기를 잡아 놓고도 고민이었다. 오늘은 얼마나 팔릴까. 시장에 가져 갔다가도 안 팔리면 낭패였다. 자칫 두고 팔았다가 상한 생선에 고객이 배탈이라도 나면 손해가 더 컸다. 울며 겨자 먹기로 버리는 생선이 부지기수였다.

이제는 다르다. 그저 잡은 물고기를 망에 담아 강에 넣어뒀다가 고객 전화가 오는 대로 배달 서비스에 부친다. 비싼 냉장고도, 밤에 물고기 도둑을 망볼 사람도 따로 둘 필요가 없어졌다. 휴대폰 하나가 가져다 준 멋진 신세계! 아프리카의 휴대전화 사용자 수는 이미 6억5000만명을 넘었다.

저자들이 2009년 가을 재건이 한창이던 이라크를 처음 방문했을 때도 눈에 띄었던 것은 여기저기 사람들이 들고다니는 휴대전화였다. 사담 후세인 몰락 이후 6년 넘게 전쟁에 휘말려 있었던 이 나라 사람들이 의식주의 생필품을 뒤로 하고 너도나도 먼저 장만한 게 휴대전화였다. 새로운 삶의 축이었다.

21세기 첫 10년 사이 인터넷으로 연결된 전 세계인은 3억5000만명에서 20억명 이상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7억5000만명에서 60억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2025년이면? 약 80억명에 이르는 세계 인구 대부분이 온라인에서 활동하게 된다. 세계 사람 대부분이 손바닥 안의 기기를 갖고 세상 모든 정보에 접속할 수 있게 되는 세상.

그 때쯤이면 사이버 공간, 즉 가상 세계에 거주하는 인구가 지구상에 실제 거주하는 인구 수를 넘게 된다. 그로 인한 변화는 전 영역에 걸친다. 저자들은 ‘무정부 상태를 수반하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실험’이라고 명명한다. “역사상 이토록 많은 장소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손끝에 그토록 많은 힘을 가졌던 적이 없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중개인 없이 실시간 콘텐츠를 소유하고 개발하고 확산시킬 수 있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저자들은 그러나 우리는 아직 디지털 시대를 제대로 시작도 안 했다고 말한다. 키워드는 연결성(connectivity)이다. 상호연결성은 새로운 세계화를 낳는다. 공동의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유형의 집단 행동이 가능해진다. 그로 인한 ‘규모의 효과’는 정치 경제 미디어 비즈니스 사회규범을 포함한 사회 전 영역에 대 지각 변동에 상응하는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가상 세계에서 우리는 실로 다양한 수단과 도구를 통해 아주 빠르게 연결성을 경험하게 된다. 구글 글래스에 이어 입는 컴퓨터가 나오는 세상이다. 그 결과 우리는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 일종의 이중 국적자가 된다.  동시에 두 가지 세상의 통제를 받으면서 살고, 일하고, 심지어 ‘존재’하게 된다.

이런 디지털 사회가 장미빛일까? 저자들은 낙관도 비관도 않는다. 가상 세계는 현실 세계와 어울리고 또 충돌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은 엄청난 선일 수도 무시무시한 악의 근원일 수도 있다”고 저자들은 분명히 적어 둔다. 따라서 국가는 앞으로 국내외 정책을 펼 때도 두 가지 세상을 염두에 두고 조심스레 접근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곧곧에서 파열음이 터질 것이다.

무엇보다 가상 세계에 대한 통제력을 두고 개인, 집단, 국가 간에 새로운 경쟁과 갈등이 일어날 것이다. 대중은 인터넷과 더불어 더 큰 감시 능력을 갖게 되지만, 같은 공간이 해커를 비롯한 반체제 세력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끼리의 접촉과 교류, 거래가 점차 가상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개인의 신원 역시 ‘가상 아이디’와 ‘온라인 신원’이 더 중요해지는 상황이 될 수 있다.

교육도 전통적 과목이 사라지고 더 많이 상호 작용할 수 있는 워크숍으로 대체된다. 미래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플랫폼들이 전 세계 예술가, 작가, 감독, 음악가들에게 더 많은 청중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언론의 혁명적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개방형 네트워크 플랫폼을 통한 뉴스 속보가 쏟아지고 있다. 앞으로 언론에 대한 충성심은 언론이 제공해주는 분석과 관점뿐만 아니라 언론에 대한 신뢰로부터 나오게 될 것이다. 주류 언론은 쏟아지는 정보에 대한 ‘신뢰성 필터’ 역할을 맡게 된다. 기업의 리더, 정책 당국자, 지식인 같은 엘리트들에게는, 설득력 있는 분석을 제공해줄 수 있는 능력 못지 않게 ‘검증’이 언론의 중요한 능력으로 간주될 것이다.

책은 세계 최대 IT 기업 구글의 CEO인 에릭 슈미트를 주 저자로 앞세웠다. 적임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상당 부분이 또다른 공동 저자이자 구글 싱크탱크인 ‘구글 아이디어’의 제러드 코언 소장 필치로 짐작된다. 그는 대학 졸업 직후부터 미 국무부에 들어가 중동과 남아시아 지역의 대테러 작전과 국가 재건 실무에 깊이 관여했던 인물. 책 내용도 전후 재건 현장 보고서 같은 대목이 많다.

7개 챕터 중 초반 2개 챕터 정도에서 슈미트의 흔적이 느껴질 뿐 나머지 대부분은 사이버 테러와 국가 안보에 할애된다. 그런 점에서 일반 독자들보다는 국가 안보 관계자들이 더 반길 만하다. 책 날개를 장식한 국내외 유명 인사들의 화려한 추천사들만 보고 기대에 차서 책장을 펴든 사람들은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