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부터 공공·민간 부문의 정년이 단계적으로 만 60세로 늘어나게 된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대선 공약 중 하나인 정년 연장 의무화가 정치권의 입법으로 가시권에 접어든 것이다. 재계는 비용 증가와 신규채용 감소, 생산성 하락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정년 연장을 반기면서도 '임금피크제' 도입 등 임금 삭감을 우려하고 있다.

2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공공·민간 부문의 정년을 만 60세로 연장하는 '고용상 연령 차별 금지와 고령자 고용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현행법상 권고 조항인 '정년 60세'를 의무조항으로 규정하고 종업원 300인 이상 사업장은 2016년 1월1일부터, 국가와 지자체 및 종업원 300인 미만 사업장은 2017년 1월1일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하게 했다.

◆ 재계 "일자리 늘리라며 정치권이 발목잡아"

재계는 '정년연장법'이 일률적으로 정년 60세를 의무화하며 기업 현실을 도외시했다고 지적한다. 정년을 60세로 의무화하면 고령자에 대한 인건비 부담이 가중돼 가뜩이나 침체된 경제상황 속에서 기업들을 더욱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가 앞장서서 신규채용 등 청년 실업 해소를 강조하는데, 정년이 연장되면 그만큼 기업 입장에서 신규채용 여력이 줄어드는 것도 부담이다.

재계는 특히 현재 300인 이상 사업장 평균 정년이 57.4세인 점을 감안한다면, 정년이 연장되는 약 3년의 기간 동안 신규 채용에 심각한 지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달라고 요구하면서 정치권이 되레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고령자들이 오랫동안 노동시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공감한다"면서도 "연공급 임금체계와 고용의 경직성 등으로 60세 이상 정년 의무화는 기업의 고용유지 부담을 크게 가중시킬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고용유지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현재 논의되는 임금피크제 기준 연령을 50대 초중반에서 40대 중후반으로 내려야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2011년 임단협을 통해 정년을 사실상 60세로 늘린 현대기아차는 최근 해외생산을 늘리고 있다. 높아진 인건비와 생산성 악화로 국내보다는 해외로 생산기지를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년이 늘면서 생산성이 향상되지 않고 인건비 등 부담만 늘었기 때문이다.

재계 한 고위 임원은 "정년연장법이 시행되면 사실상 기업들에게 인건비가 싼 제3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라는 말과 다름없다"며 "국내에서 아버지는 환갑까지 일하고 아들은 일자리가 없어 '백수'로 노는 '세대갈등'도 생길지 모른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계도 정년 연장 의무화가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날 논평에서 "중소기업은 청년인력의 높은 이직률로 인력난과 인건비 부담이란 이중고를 겪고 있어 인력운용상 어려움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며 반대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고령자 일자리 문제는 한 기업에서 오래 근무하게 하는 정년 의무화가 아니라 고령자를 위한 적합직무를 개발하고 임금피크제 활성화 등 고령자 고용수요를 창출하기 위한 정책 노력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노동계 "환영하지만 임금피크제 도입은 안돼"

노동계는 정년 60세 연장 의무화로 고용불안이 해소됐다며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 임금 조정과 연계한 연장에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 사회 갈등 양상으로 번지며 혼란을 가중시킬 우려가 나온다.

이번 개정안에는 정년 연장에 따른 사업장의 부담을 덜기 위해 임금체계를 개편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아 사실상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정년연장이 임금삭감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 민주노총 등은 "고용을 무기로 임금을 줄이는 것은 안된다"는 입장이다.

임금피크제 도입이 어려울 경우 기업들이 편법을 도입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60세 정년이 보장되는 부장급 직원들을 빨리 임원으로 승진시켜 연봉계약직으로 전환한 다음에 2~3년만에 해임하는 방식이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재계 한 관계자는 "부장급 등 인사 적체가 심한 기업의 경우 급여가 삭감된 임원으로 승진시켜 사실상 고령자 구조조정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 밀어붙이기식 정년연장, 경제살리기에 도움이 될까?

경총에 따르면 일본이 1994년 60세 정년을 의무화했을 당시 60세 이상 정년인 기업의 비율은 93.3%였다. 반면 국내 기업은 37.5%에 불과하다. 기업 스스로 정년연장을 받아들이기엔 시기적으로 이른 상황이라는 것이다.

경총 관계자는 "사업장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정년연장을 의무화하는 것은 결국 세대간 갈등과 중소기업-대기업 간의 노동시장 양극화만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고령화 문제도 심각하지만 청년실업이 더 큰 문제"라며 "(정년 연장 법제화가)일자리 선순환에 걸림돌이 될 수 있어 청년 실업 문제가 악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논의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국회가 충분한 준비기간을 부여하지 않고 서둘러 의무화한 것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임금피크제 도입 등 노사간의 이익균형을 위한 전제조건 없이 정년 연장을 의무화 한 것은 건전한 노사협력의 토대를 흔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경련 관계자도 "정년연장에 따른 기업의 고용부담 완화를 위해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헌 소지 논란도 있다. 헌법에 보장된 기업활동의 자유, 계약자유의 원칙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법무법인 화우의 한 변호사는 “업무 내용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정년을 연장하는 것은 기업활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