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6시 기준 캠코 본사 등 창구 가접수 1만2367건
-신제윤 위원장 "국민행복기금 만병통치약 아니다"

"IMF(국제통화기금) 때 가게도 전셋집도 다 잃었어요. 일정하게 머무는 곳이 없다 보니 (카드 이용 등)고지서도 제대로 못 받고…. 은행에서 빌린 게 채권추심업체로 넘어가고 여기에 또 이자가 붙다 보니 이젠 빚이 얼마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금융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의 재활을 돕기 위해 도입된 국민행복기금 가접수가 시작된 22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서울 강남 본사. 이날 첫 번째로 채무 재조정을 신청한 송모(62)씨는 "접수창구가 문을 열기 한 시간 전부터 기다렸다"고 말했다. 아침부터 신청자들이 몰리면서 캠코 본사에선 2시간 만에 230여명이 접수를 마쳤다. 시간이 갈수록 대기인 수가 부쩍 늘었다. 상담창구 40개로 신청자들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이날 오후 6시 기준으로 캠코와 신용회복위원회, 국민·농협은행 창구에선 총 1만2367건의 가접수가 이뤄졌다. 전국에서 시간당 약 1500여건이 접수된 셈이다.

◆ 접수 첫날 1만2000여건…일자리 없는 50·60대가 현장접수처 찾아

이날 창구 신청자의 상당수가 50~60대였다. 송씨의 경우 지난 IMF 외환위기로 운영하던 제과점 문을 닫아야 했다. "동네 빵집은 선물용 빵이 팔려야 돈이 남는데 IMF가 오니까 장사가 안됐어요. 신용카드로 재료비를 사고 전세금을 빼서 직원 월급을 주고…." 보험까지 해지해 가게에 쏟아 부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임대료가 밀리자 송씨는 권리금도 받지 못하고 건물에서 쫓겨나야 했다. 그 자리엔 대기업 계열사 편의점이 들어섰다. 송씨는 당시 자영업을 하던 친척이 IMF 여파로 운영자금을 구하자 대신 대출까지 받아줬다. 은행에서 빌린 600만원은 급속도로 불었다. 송씨는 그때 이후 파출부 일을 하면서 친척집을 전전하고 있다. 그는 "자꾸 (추심업체에서) 연락하고 구속시킨다고 해 불안하게 살고 있다"며 "국민행복기금의 지원을 받는다면 파출부 일이라도 열심히 해 꼭 갚겠다"며 울먹였다.

한 60대 남성은 참고용 채무조정신청서를 보면서 서류를 한자 한자 채워넣고 있었다. 신청자들은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은행 대출을 갚지 못했고, 이후 캐피탈·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고금리 대출로 넘어가게 됐다"고 말했다. 빚을 진 금융기관도 최소한 2~3곳이 넘었다.

이날 국민행복기금의 문을 두드린 신청자 중엔 한 달에 100만원도 채 벌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박모(46)씨는 함께 사업을 시작한 지인에게 속아 대출금을 떠안았다. 박씨는 생활비를 은행 대출과 카드빚으로 충당했다. 그는 "이후 저축은행과 캐피탈업체에서 돈을 빌렸고, 그 돈을 갚기 위해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았지만 이자율이 너무 높아 더 갚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아르바이트로 매달 50만원 안팎을 버는 박씨가 진 빚은 총 600여만원. 그는 결혼도 하지 못한 채 형과 70대 부모님을 모시며 살고 있다.

국민행복기금 관계자는 "직장이 있거나 20~30대 젊은층은 인터넷으로 (가접수)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며 "나이가 많아 컴퓨터를 이용하기 불편하거나 일자리가 없는 분들이 주로 직접 지점을 방문해 신청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금융당국, 국민행복기금과 취업지원 연계 지원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이날 캠코 본사에서 진행된 서민금융간담회에 참석해 "국민행복기금이 만병통치약은 아니기 때문에 채무자의 상환능력을 키워줘야 한다"며 직업훈련·취업지원프로그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채무를 재조정한 다음 꾸준히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금융당국은 국민행복기금 지원 대상자들을 '취업성공패키지 1' 등 취업프로그램에 참여시키는 한편 직업훈련수당·취업성공수당 등을 지급해 일자리 찾기를 도울 예정이다. 국민행복기금 지원 대상자를 고용하는 업체에도 연간 720만~860만원의 고용지원금을 제공한다.

신 위원장은 또 "최대한 많은 분이 국민행복기금의 수혜를 볼 수 있도록 홍보를 충분히 해야 하고 관련 금융기관과 협력도 강화해야 한다"며 "국민행복기금의 지원 대상이 아닌 경우라도 바꿔드림론 등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서도 지원받을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행복기금은 오는 30일까지 캠코·서민금융종합지원센터·신복위 지점과 전국 농협·국민은행 영업점에서 가접수를 진행한다. 다음 달 시작될 본접수에 앞서 본인 확인·정보제공 동의 등 서류작업을 미리 진행하는 것이다. 올해 2월 말 기준으로 채무 원금 1억원 이하, 연체 기간이 6개월 이상인 금융채무불이행자인 경우 채무 원금 일부를 탕감해주고 최장 10년에 걸쳐 나눠 갚도록 지원한다. 기초수급자·70세 이상 고령자 등은 최대 70%까지 감면받을 수 있다.

이달 중 가접수를 마친 채무자는 국민행복기금이 해당 금융기관에 통보해 채권추심을 중단시켜주고, 지원자로 선정됐을 때 채무 감면율도 10%포인트 우대해준다. 사전 신청자는 채무 원금의 40~50%의 감면율이 적용된다. 서둘러 자발적으로 신청하는 것에 대해 빚을 갚을 의지가 크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국민행복기금이 먼저 연락해 채무 재조정을 받을 경우 적용하는 감면율은 30~50%다.

방문신청을 할 때는 신분증과 주민등록등본, 국세청 등에서 발급한 소득증빙자료 등을 제출해야 한다. 공인인증서를 보유한 경우엔 인터넷 홈페이지(www.happyfund.or.kr)를 통해 사전예약과 가접수를 진행할 수 있다. '서민금융 콜센터'(국번 없이 1397)를 통하면 상담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