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A은행의 방카슈랑스(은행에서 판매하는 보험 상품) 전담 창구. 연금보험을 들러 왔다고 하자 은행원은 대뜸 B생명 종신형 상품을 권유했다. 종신형 상품은 원하지 않는다며 다른 보험사 상품은 없느냐고 물었지만 "일단 설계나 한번 받아보라"고 했다. 이 직원은 "원래 B생명이 (방카슈랑스 모집) 수수료가 비싼데 이 상품은 아주 싸게 나왔다"며 가입을 부추겼다.

은행은 방카슈랑스 상품 하나를 팔 때마다 보험사로부터 '사업비' 명목의 수수료를 받는데, 이게 싸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선 그만큼 보험금 환급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 직원이 동그라미를 치며 강조한 B생명 연금보험의 수수료는 2.62%. 비교 대상이 된 C생명 수수료는 3.29%였다. 그러나 이는 수수료 가운데 일부인 '계약 체결 비용'에 불과했다. 전체 수수료는 B생명 상품이 7.8%, C생명 상품이 7.6%로 오히려 추천해준 상품의 수수료가 더 비쌌다. 불완전판매를 한 셈이다.

같은 날 방문한 D은행과 E은행에서는 딱 두 개의 상품만 내놨는데, 두 은행이 추천한 상품이 똑같았다. 다른 회사 것은 없느냐고 물으니 "요즘 다 여기서 많이들 하신다. 사람들이 많이 하는 걸 해야 안전하지 않겠느냐"며 특정 상품으로의 가입을 유도했다.

은행만 배 불리는 방카슈랑스

방카슈랑스는 보험 판매 수수료를 낮춰, 소비자가 적은 보험료를 내고 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에서 2003년에 처음 도입됐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방카슈랑스는 당초의 취지와는 달리 소비자 혜택은 온데간데없고, 은행 배만 불려주는 상품으로 변질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우선 일반 보험 상품과 방카슈랑스 상품의 판매수수료율에 별 차이가 없다. 예를 들어 A보험사의 연금보험의 경우 방카슈랑스는 6.15%, 설계사를 통한 판매 땐 6.45%의 수수료를 뗀다.

보험연구원 안철경 부원장은 “은행이 판매만 하고 계약 유지는 보험사가 떠맡는 방카슈랑스 상품은 보험사가 판매하는 상품보다 수수료가 적어도 30%는 싸야 하는데, 고객에게 돌아가야 할 수수료 인하 혜택을 은행이 가져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방카슈랑스는 은행의 주 수익원으로 자리 잡았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4대 시중은행의 방카슈랑스 수수료 수익은 6700억원에 달한다. 2011년 5100억원에서 30% 넘게 늘었다. 4대 은행의 방카슈랑스 판매액(수입 보험료 기준)은 지난해 10조731억원으로, 2011년 5조454억원에 비해 2배가량 늘어났다. 저금리가 고착되면서 예대마진이 줄자 은행들이 비이자 수익(수수료)을 늘려 수익을 보전하려 하고, 그중에서도 수수료율이 높은 방카슈랑스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에서 펀드를 팔면 은행이 받는 수수료가 0.7~1.5%인데, 방카슈랑스를 팔면 3~8%의 수수료를 보험사로부터 받을 수 있다. 보험료 1억원짜리 고객을 유치하면 바로 300만~800만원의 수수료를 은행이 챙긴다. 이 때문에 일부 은행은 방카슈랑스 판매 실적에 따라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주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 수퍼갑 행세, 소비자 권익은 뒷전

반면 소비자 편의는 뒷전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6개 은행을 대상으로 방카슈랑스 영업에 대해 검사를 실시한 결과, 우리은행은 방카슈랑스 상품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만기 때 환급금을 7800만원 적게 받게 하는 등 고객 50명에게 손해를 끼쳤다. 국민은행 등은 대출받은 중소기업에 방카슈랑스 상품 1억원어치를 억지로 팔았다가 적발됐다.

한 손해보험회사 임원은 “은행은 팔기만 하면 그만이고, 계약 유지나 고객 관리는 다 보험사에서 한다”며 “은행 입장에선 아무 부담 없이 수수료 수입을 올릴 수 있으니까 무분별한 영업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연구원 황진태 연구위원은 “은행들이 방카슈랑스 수수료율을 대폭 내려 소비자들이 보험료 인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원래 방카슈랑스 도입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