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력 남용을 막기 위한 방안은 법치주의와 지속가능한 성장을 전제로 추진돼야 한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와 관련, 특정 내부거래가 사익편취 목적인지 건전한 투자목적인지 여부를 구분할 수 있는 구체적 기준 마련이 전제돼야 한다.”

17일 오전 한국경제연구원 주최로 여의도 사학연금회관에서 열린 ‘경제민주화 관련 공정거래법제의 쟁점과 과제’ 세미나에서 국회에서 입법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 계열사 거래 규제 등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입법 논의가 ‘마구잡이식 기업 때리기’로 변질돼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15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상임위 차원이긴 하겠지만, (경제민주화) 공약 내용이 아닌 것도 포함돼 있다”며 “무리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고 밝힌 바 있다.

국회의 경제민주화 입법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재계 씽크탱크인 한경연을 중심으로 재계와 정치권의 힘겨루기도 본격화 하는 모양새다. 한경연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일감몰아주기 규제의 문제점 및 위헌성 검토’, ‘금산분리 법안 쟁점에 대한 비판적 검토’, ‘특경법상 배임죄 강화의 문제점’ 등 경제민주화 주요 쟁점에 대한 비판적 보고서를 꾸준히 발간했다.

이날 ‘공정거래법 집행체계 개선의 쟁점과 과제’ 발제자로 나선 신석훈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경제민주화의 목적이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억제하는 것이라면 반대할 이유는 없다”면서도 “과징금과 형사처벌 중심의 현행 ‘공적(公的)집행’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집단소송 등 ‘사적(私的)집행’수단을 도입해 무조건적으로 집행 수준을 강화하는 것은 이중처벌 금지원칙과 과잉금지 원칙을 핵심으로 한 법치주의 원리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현재 가장 논란이 많은 ‘불공정 하도급거래’와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 관련 개정 논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신 위원은 “집행은 강화하면서 행위의 불공정성 판단은 점점 쉽게 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신중하게 행위의 부당성을 입증한 뒤 제재해야 하는 게 법치주의 원칙인데 최근 법 개정논의는 반대로 진행되고 있어 정상적 기업활동마저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영수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 행위(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쟁점과 과제’라는 발제에서 “일감몰아주기가 회사 기회의 유용이나 중소기업 고유업종 침탈, 총수 일가에 의한 편법적 상속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잠재돼 있다”면서도 “반면 기업 입장에서는 거래비용의 내부화, 기업비밀유지, 공급처 및 판로의 안정적 확보 등 경영 효율성 측면도 커 행위의 부당성 판단 시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이어 “법 개정 방안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어떤 행위가 법에 위반되거나 허용될 수 있는지 기업의 입장에서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며 “객관적이고 예측가능 한 기준을 개발하는 노력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세미나에는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 교수, 전삼현 숭실대 법학 교수, 최승재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주최로 17일 열린 '경제민주화 관련 공정거래법제의 쟁점과 과제' 정책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권재열 경희대 교수, 전삼현 숭실대 교수, 신석훈 한경연 부연구위원,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 신영수 경북대 교수, 이상승 서울대 교수, 최승재 김앤장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