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투자 촉구 발언에 대해 삼성그룹은 "이미 국내에선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시설 투자를 할 만큼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다만 "이건희 회장이 삼성도 작지만 열심히 뛰어서 (박근혜 정부를) 도와드리겠다고 밝힌 바 있어 추가 투자 여력에 대해 계속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경직된 노동 환경 때문에 국내보다는 해외 투자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그러나 "노동환경이 바뀌면 국내 투자도 재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계, "삼성전자·현대차 겨냥 발언" 해석

재계에선 박 대통령의 발언이 양대(兩大) 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겨냥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두 회사의 현금과 현금성 자산이 많기도 하거니와 지난해 큰 폭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현금과 현금성 자산 보유액이 28% 증가해 18조7900억원으로 불어났다. 현대자동차도 6조7600억원으로 8.5% 늘었다. 두 회사의 보유액 합계(25조5500억원)는 박 대통령이 언급한 52조원의 절반에 육박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두 회사의 현금과 현금 보유액 증가는 매출 규모 확대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현금은 기업 입장에선 일종의 비상금"이라면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연 매출의 10% 정도 현금은 항상 갖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SK·LG·롯데그룹은 지난해 실적이 좋지 않아 현금과 현금성 자산 보유액이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10대 그룹 관계자는 "현금 보유액 규모도 삼성·현대차그룹과 나머지 그룹 사이에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무작정 늘리긴 힘들어"… 주요 그룹들, 저마다 고민

주요 그룹은 대통령의 발언이 재계 전체에 투자 확대를 압박하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새 정부 출범 첫해인 올해 투자를 최대한 늘리겠지만, 현실적으로 국내 투자를 늘리기엔 한계가 있다"며 저마다 고민에 빠졌다.

삼성그룹은 주력 사업인 전자 부문이 국내 투자를 확대할 여지가 별로 없다. 삼성의 대규모 투자는 주로 1개의 생산라인 증설에 3조원 안팎이 들어가는 반도체·디스플레이 부문에 집중된다. 반도체는 이미 경기도 기흥·화성에 15개 안팎의 라인을, 디스플레이도 충남 천안·아산에 수십조원을 들인 대규모 라인을 가동 중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강성 노조에 발목이 잡혀 있어 국내 투자에 소극적이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지난해 국내에서 349만대, 해외에서 363만대를 생산했다. 해외 생산량이 사상 처음으로 국내를 추월했다. 국내 공장의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지속되는 상황에선 해외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경영진의 판단이다.

SK그룹은 주력 사업인 정유·통신 부문의 내수 시장이 포화 상태라 국내 투자를 늘리기 곤란하다. 최태원 SK㈜ 회장이 횡령 혐의로 수감돼 있다는 점도 어려운 부분이다. 신성장 동력 확보 차원에서 공을 들이던 신규 사업은 최 회장 수감 이후 전면 중단된 상태다.

LG그룹은 올해 사상 최대인 20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은 변함이 없지만 투자 확대에 대해선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롯데그룹은 대·중소기업 상생(相生) 기조에 발목을 잡혀 있다. 유통 부문의 대규모 투자는 할인점·수퍼마켓 신규 출점을 통해 이뤄지는데, 골목상권 침해 논란 때문에 신규 출점을 주저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한진·현대·STX그룹 등은 조선·항공·해운 경기 침체에 따른 실적 보릿고개로 현금조차 넉넉하지 않다. 5대 그룹 관계자는 "경영을 하다 보면 불확실성 때문에 계획액보다 집행액이 적은 경우가 생긴다"면서 "이미 수립한 계획이라도 지킬 수 있도록 정부도 정책 투명성 제고와 우호적 투자 환경 조성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