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기차로 40분을 달려 도착한 후지사와시(藤�n市). 올해로 창립 232년을 맞는 일본 제1의 제약회사 다케다(武田)는 2011년 오사카와 쓰쿠바의 연구소들을 통합해 이곳에 세계 최대 규모의 쇼난(湘南)연구센터를 세웠다. 연구동 5동을 연결한 회랑의 길이가 400m나 될 정도로 거대한 연구소다. 마루야마 데쓰유키(丸山哲行) 연구소장은 "쇼난연구센터는 아시아 1위를 넘어 세계 1위가 되기 위해 회사의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 전사적인 글로벌화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다케다는 1781년 오사카의 작은 약재상에서 출발해 일본 제약업계의 독보적인 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1999년에는 미국과 일본에 당뇨병 치료 신약을 출시해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대형 신약들의 특허가 잇따라 끝나면서 2008년 1조5383억엔(약 17조5400억원)의 매출을 기점으로 2010년까지 줄곧 내리막을 걸었다. 일본 내수 시장을 믿고 있다가 젊은 인구의 감소에 타격을 입은 점도 컸다.

회사는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먼저 사람부터 바꿨다. 쇼난연구센터에서는 외국인 연구원들도 눈에 띄었다. 마루야마 소장은 "쇼난연구센터에 있는 연구원 1200명 중 50명이 외국인인데,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샌디에이고(250명), 영국 케임브리지(150), 싱가포르(30)의 해외 연구소까지 합하면 다케다 전체 연구원 중 30%가 외국인이다. 마루야마 소장 역시 미국 출신으로 영국과 싱가포르 등에서 세계적인 제약사의 연구원으로 있다가 다케다에 합류했다. 그는 지난해 폴 채프먼이란 이름을 버리고 일본에 귀화했다.

사쿠마 후미에(佐久間文惠) 인재개발 총괄 상무는 도쿄에서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글로벌화는 철저한 현지화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2010년에는 전 세계 다케다 직원의 80%가 일본과 북미 출신이었지만, 이듬해엔 일본과 북미, 유럽, 아시아·신흥시장이 4분 하는 구도로 바뀌었다. 한국다케다제약 이건욱 전무는 "국내 진출 일본 회사 중 일본어로 회의하지 않는 회사는 다케다가 거의 유일하다"고 말했다.

연구 환경도 바뀌었다. 쇼난연구센터에서는 건물들을 잇는 회랑 곳곳의 '노마드(nomad·유목민)'라는 자유공간에서 서로 다른 전공의 연구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토론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과거에는 바로 옆 연구실인데도 공식 회의가 아니면 만나는 일이 없던 사람들이었다. 마루야마 소장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단 두 장짜리 지원서만 내면 된다”고 말했다. 절반이 외부 인사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통과하면 필요한 연구원을 회사 안팎에서 자유롭게 뽑을 수 있게 했다. 이렇게 뽑힌 과제 25개 중 15개가 실제 연구개발(R&D) 프로젝트로 발전했다.

연구소에는 외부 대학이나 벤처업체의 실험실도 있었다. 마루야마 소장은 “현재 일본과 미국·유럽·한국의 100여개 벤처, 연구기관과 협업하고 있다”며 “노벨상을 받은 교토대 야마나카 교수와도 줄기세포 연구를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케다는 2011년 신용등급이 AA1에서 AA3(무디스)로 떨어지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96억유로(14조1000억원)를 들여 신흥시장의 강자인 스위스 나이코메드(Nycomed)사를 인수했다. R&D에 이어 영업망의 글로벌화를 위한 도전이었다. 이후 다케다가 진출한 국가가 28개국에서 70개국으로 늘었다. 매출도 2011년 1조5089억엔(17조2000억원)으로 다시 늘어나 세계 16위에서 12위로 도약했다.

다케다는 본사와 해외 지사의 인력 교류를 늘리는 한편, 본사의 외국인 신입사원 채용도 3년 새 4배 가까이 늘렸다. 직원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일종의 수혈인 셈이다. 지난해 다케다에 입사해 도쿄의 대학병원 영업소에서 일하는 정재훈씨는 “일본인 선배들은 ‘외국에서 온 후배가 비슷하게 따라오면 내 존재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긴장감을 나타낸다”고 말했다.